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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筑学概论2011剧本(韩语)(1

2017-06-05 50页 doc 243KB 230阅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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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筑学概论2011剧本(韩语)(1 건축학개론 2011 제작 명필름 I 각본 이용주 1. 오래된 집. 오후. 멀리서 매미 소리. 무더운 여름 한 낮. 쨍한 햇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허름한 단층 벽돌집 한 채. 오래된 집이다. 한동안 비워놓은 듯 집 안은 상태가 엉망이다. 흉하게 일어난 마룻바닥. 꼬질꼬질 얼룩진 벽지. 날카롭게 깨진 유리창. 서연이 창을 힘껏 열어젖힌다.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들. 콜록콜록. 타이틀이 조용히 떠오른다. 2. 설계사무소. 회의실. 낮. 긴 테이블 위에 건축 도면과 모델...
建筑学概论2011剧本(韩语)(1
건축학개론 2011 제작 명필름 I 각본 이용주 1. 오래된 집. 오후. 멀리서 매미 소리. 무더운 여름 한 낮. 쨍한 햇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허름한 단층 벽돌집 한 채. 오래된 집이다. 한동안 비워놓은 듯 집 안은 상태가 엉망이다. 흉하게 일어난 마룻바닥. 꼬질꼬질 얼룩진 벽지. 날카롭게 깨진 유리창. 서연이 창을 힘껏 열어젖힌다.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들. 콜록콜록. 타이틀이 조용히 떠오른다. <건축학개론> 2. 설계사무소. 회의실. 낮. 긴 테이블 위에 건축 도면과 모델이 놓여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구소장. 두리번. 다가와 모델을 들여다본다. 제법 날카로운 표정으로 훑어보는데... 깜짝! 구석 의자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승민. 승민아... 결려. (목잡는) 구소장(놀란 가슴) 아 자식. 밤 샌 거 꼭... 이렇게 극적으로 티를 내요. 하튼 보면 영리해. 찜질방이라도 갔다 와. 미팅 2시니까... 승민(하품하는) 내가 건축주 만나 뭐해요? 구소장임마. 디자인 한 놈이 같이 가야지. 승민... 나 옷도 없는데... (긁적. 일어서는) 꼬락서니가 남루한. 밤 샌 티 물씬 나는 승민이다. 구소장양복 하나 갖다 놓으랬지! 3. 설계사무소. 낮. 구석 자리에 승민. 담배를 물고 낙서하듯 끄적끄적. 작은 스케치북에 능숙하게 건물을 스케치한다. 그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은채. 은채(버럭) 아 진짜! 사무실에서 피지 말라니깐! 간접흡연이 얼마나 안좋은데! 승민그럼 직접흡연하는 난 얼마나 안좋겠니? 안그래? 보면 꼭... 지 생각만 하고. 은채(얄밉다) 손님 왔어요. 승민손님? 누구? 은채몰라요. 팀장님 친구래요. 승민내 친구? 친구 누구? 은채(버럭)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4. 설계사무소. 회의실. 낮. 테이블 너머로 서연이 앉아 있다. 건너편 승민이 아무 말 없이 서연을 바라본다. 서연오랜만이네. 승민... 서연동문주소록 정확하네. 혹시나 했는데. 근데 맞네. 승민, 굳은 얼굴로. 승민저기... 근데... 서연... ? 승민... 누구... 신지? 급격히 어색한. 서로 말이 없다가... 서연나 몰라? ...... 세요? 승민... ? 서연저기... 옛날에... 대학 1학년때... 승민이 경계하듯 미간을 찡그린다. 5. 서연차. 낮. 서연어떻게 날 까먹어? 서연의 아우디 승용차가 지방 국도를 달리고 있다. 승민에이. 까먹긴 뭘 까먹어. 하도 오랜만이니까... 서연그래두. 나 별루 변한 것도 없는데. 승민(보는) 살은 좀... 찐 거 같은... 서연... 승민(흠흠) 그래서... 무슨 일 해? 서연그냥 방송일 조금. 승민방송? 방송 뭐? 서연케이블 같은데서 아침에 배도 타고 산도 오르고. 있어 그런 거. 승민사는 덴 어디야? 서연개포동. 승민남편은 뭐하는데? 서연(보는) ... 동사무소에서 인구조사 나왔니? 지금. 머쓱해진 승민이 긁적. 창밖을 내다본다. 도로 변으로 너른 논들. 벼들이 한창 초록이다. 6. 오래된 집. 낮. 승민과 서연이 오래된 집 안을 둘러보고 있다. 서연옛날에 살던 집인데... 너무 낡아서. 이번에 싹 밀고 제대로 새로 지으려고. 승민... (둘러보는) 서연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어? 승민(놀라는) 나? ... 나보고 하라고? 서연(빤히 보는) 그럼 내가 널 왜 만나러 왔겠어? 승민이 껌뻑껌뻑. 서연을 바라본다. 승민근데 왜... 나한테...? 서연내가 몇 명 만나봤는데, 보니까 죄다 사기꾼 같고 영 못 믿겠어. 아무래도 이런 일은 아는 사람한테 맡기는 게... 딴 사람들도 다 그러더라. 승민(웃는) 에이. 내가 무슨. 나 못해. 서연왜? 승민나 이런 거 한번도 안 해봤어. 서연잘됐네. 그럼 이번에 해보면 되잖아. 승민야야. 그러지말고, 내가 이런 거 잘하는데 딴데 소개 시켜줄께. 이런 거... 서연(끊는) 이런 거? 돈이 안된다 이거야? 돈 제대로 줄께. 걱정마. 승민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서연아니면 됐네. 승민안된다니깐! 서연이 움찔 놀란다. 승민이 다시 달래듯. 승민그게 회사엔 룰이란 게 있어요. 젤 위에 소장. 그 밑에 부장. 그렇게... 응? 난 그저 월급 받는 직원. 전문 용어로 설계보조원. 더 정확히는 시다. 따까리. 서연... 승민나같은 일개 시다가... 응? (웃는) 사무실에서 봤을 땐 말이 안된다는 거지. 서연이 가만히 승민을 본다. 서연그러니까 니 말은, 느네 소장이 오케이 할 리가 없다... 이거야? 승민그렇지. 바로 그거지. 알아듣네. 7. 설계사무소. 회의실. 낮. 구소장>잘 할 수 있지? 화면 가득 구소장 얼굴. 승민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승민은 똥 씹은 표정. 그 옆 서연은 의기양양. 8. 설계사무소. 옥상. 낮. 담배 피고 있는 승민. 옆에 은채가 서있다. 승민안 내켜. 은채왜요? 승민뭔가 말리는 기분이야. 불길해. 은채뭐가? 승민생각해봐. 친구랍시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집 져줘’ 안이상해? 은채뭐가 이상해? 우정만 돋는구만. 뭐. 승민우정 좋아하네. 싸가지 못봤어? 지가 청담동 며느리면 다야? 은채개포동이라며. 승민저 나이에 집 짓겠다는 것도 이상하고... 은채남편 복 받은 년인가 보지. 뭐. 승민(보는) ... 너 오늘 유난히 대답 잘 한다? 라임 맞춰가면서. 은채그니까. 쓸데없는 걱정 말고... 좋은 기회잖아요. 데뷰? 응?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 하나 생기는 건데... 그거 돈으로 치면 얼말까? 9. 설계사무소. 회의실. 낮. 서연, 의기양양한 말투로. 서연지금부터 바짝 서두르면 얼마나 걸려? 추워지기 전에 끝내줄 수 있지? 승민(끊는) 저기. 그 전에. 서연... ? 승민집을 왜 짓는데? 서연... 왜냐니? 승민그 비싼 강남 아파트에 사시는 사모님께서 구태여 촌구석에 집을 짓는 이유가... 그게 뭐냐고? 멈칫하는 서연. 서연(굳은) 그야 내 맘이지. 승민남편이 돈을 잘 버나봐? 서연... ? 승민공기 좋은 데다 집도 뚝딱 짓고. 아니 그래두 그렇지. 전원주택 단지도 있고. 더 좋은데 많은데 굳이 여기에다. 아하~ 혹시 투기야? 좋은 정보... 그런 거? 서연이 승민을 빤히 보다가... 픽. 서연너 말 되게 예쁘게 한다? 승민...? 서연돈지랄이야. 됐어? 승민... 서연더 고상한 이유가 있어야 돼? 그냥 돈지랄이면 집도 못짓니? 승민... 서연진짜 드럽게 재수없게 구네. 내키지 않으면 하지마. 내 돈 갖고 사정해 가면서 일 시킬 생각, 나도 없어. 별... 서연이 발끈 일어나서 나가버린다. 10. 주차장. 낮. 서연이 차 앞에서 뒤적뒤적. 옷이며 핸드백. 탈탈 털어도 차키가 보이질 않는다. 꽂고 내렸나? 차창 밖에서 운전석을 기웃기웃. 승민>이거... 돌아보면 승민이 차키를 들고 서있다. 서연이 흠... 헛기침. 잽싸게 채간다. 승민... 이것도. 승민이 서연의 핸드폰도 내민다. 서연, 어머 이건 몰랐네. 표정. 승민내가 잘못했어. 미안. 미안. 쏘리. 암쏘쏘리. 서연... (보는) 승민그렇다고 뭘 또 그렇게... 너 많이 격해졌다? 서연(다시 찌릿) 뭐? 11. 술집. 밤. 서연이 열심히 고기를 집어 먹는다. 건너편 승민이 헌신적으로 굽고 있다. 서연이 소주잔을 뚝딱 비워내면 승민이 공손히 잔을 채운다. 서연집 짓는 이유가 그렇게 중요해? 왜, 내가 사기라도 칠까봐? 승민또. 험악하게. 그런 게 아니라... 왜 집을 짓는지 알아야 어떤 집이 필요한지를 알지. 서연... 승민널 잘 알아야 너한테 맞는 집을 잘 지을 거 아니야? 안그래? 서연이 잠시 보다가. 서연아하~ 그러니까 날 잘 알고 싶다 이거지? 내가 궁금하시다? (배시시 웃는) 뭐가 그렇게 궁금할까? 나 어디? 뭐? 승민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서연음... 대학 졸업하고 아나운서 시험 준비하면서 방송일 시작했지. 승민... 서연근데 시험엔 계속 떨어지고. (웃는) 그러다가 에라... 4년 전에 결혼하고. 승민남편은 뭐하는데? 서연의사. 돈 잘 버는 압구정동 성형외과. 비포에프터 전문. 승민... 오. 서연그러다가 음... (생각하는) 그게 끝이네? (웃는) 와. 나 너무 심플하게 살았나? 자기 빈 잔을 채우는 서연. 한발 늦은 승민이 손가락으로 퉁치는. 서연근데... 아빠가 몸이 좀 안좋아. 승민... ? 서연수술하고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지금도 병원에 있거든. 승민... 서연그래서 집 깨끗이 잘 고쳐놓고, 퇴원하면 좀 잘 모시게. 승민... 서연이제 됐어? 집 짓는 이유. 승민... 서연넌 어떻게 살았어? 승민... 나? 서연내 집 지어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나도 믿고 맡길 거 아니야? 12. 병실. 밤. 아버지그러니까 그게... 너 낳자마자 처음 세를 들어가서. 니 엄마랑 그렇게 셋이. 아담한 2인실. 아버지가 눈을 감고 옛날 얘기를 한다. 옆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서연, 조용히 듣고 있다. 아버지그러다가... 너 초등학교 입학할 때, 모아둔 거 다 해서 그 집을 그냥 산 거지. 서연(웃는) ... 그 집이 그렇게 좋았어? 아버지니 엄마가 좋아했었지. 분가해서 처음 산 집이라서... 니 엄마가 참 좋아했었지. 니 엄마가 맨날 쓸고 닦고. 서연... 아버지건너 집에 광우엄마라고, 니 엄마랑 친한 아줌마가 있었어. 그 아줌마가 너랑 광우랑 나중에 결혼 시킨다고... 너 참 예뻐했었는데. 서연몰라. 기억 안나. (웃는) 아버지하긴. 니 엄마가 있을 때니깐, 20년도 더 전이네. 벌써... 그렇게 됐네. 서연... 아버지그때가 참 좋았지. 13. 서연집. 밤. 창에 기대 앉아 캔맥주를 홀짝거리는 서연. 꽤 높은 층인 듯. 건너편 고층 건물들. 그 너머 뒤로 총총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 서연>너무 없어 보이지 않게. 14. 설계사무소. 회의실. 낮. 받아 적던 승민이 고개를 들더니... 피식. 승민없어 보이지 않게. 그러니까 있어 보이게? 그런 거? 서연집이 너무 낡았잖아. 너무 초라하지 않게. 그런 거. 승민구체적으로 얘기해봐. 있어 보이는 것도 여러 가지잖아? 예를 들어 알프스풍이라던가. 스칸디나비아풍이라던가. 그런 거. 어디서 본 거, 들은 거, 근데 말은 안 되는 거. 그런 거 디립다 해달라는 게... 사모님들 기본자세거든? 서연이 웃으며 승민을 보다가. 서연아무거나 막? 승민아무거나 막. 서연글쎄... 별루 생각해본 게... 음... 일단. 밝게. 햇빛이 많이 들어오게. 승민(받아 적는) 기본이고. 서연거실이 넓었으면 좋겠어. 천장도 높고. 그렇다고 너무 휑하진 않게. 승민(받아 적는) 이것도 뭐. 다들... 서연로비가 있었으면 좋겠어. 현관문 열면 집 다 보이지 않게... 승민(받아 적는) 요건 좀 유니크... 서연바닥은 돌 같은 거. 대리석같은 거루다가. 승민... 대리석? 서연거실에서 하늘이 다 보이는 거야. 별도 보이고. 승민(그냥 보는) ... 필 받은 서연이 따따따. 가속도 붙는다. 서연옥상에도 정원을 만들어서 거기서 꽃도 키우고. 서연게스트룸에 화장실이랑 욕실 따로. 서연박수 치면 불이 탁 꺼지고. 서연에어콘은 천장에 달고. 서연주방은 빌트인. 서연에이브이룸. 서연싸우나실. 화면 바뀌면, 방긋 웃는 서연. 서연어떤 거 같애? 승민, 넋 놓고 멍- 해하다가... 버럭. 승민지금 회장님 집 짓니? 왜? 이왕이면 마당에 사슴도 키우지? 아니다. 이참에 아주 청와대를 짓자. 그래서 오바마도 초대해서 만찬도 하고. 서연아무거나 막 얘기하라며. 승민아무거나 막 얘기하랬지. 아무 생각 없이 막 얘기하랬니? 이런 울트라 럭셔리면 니가 가진 견적으론 화장실 하나 겨우 짓고 땡이야. 서연그럼 어떡해? 승민뭘 어떡해! 욕심을 줄이던가, 아님... 화장실에서 살던가. 서연(버럭) 근데 왜 구박이야, 구박은! 기분 나빠질려구 그러네! 15. 술집. 밤. 다시 서연이 열심히 고기를 집어 먹고, 승민이 헌신적으로 굽고 있다. 승민아니... 그러니깐. 내 말은 딴 게 아니라... 기준이 뭐냐는 거지? 아버지가 살 집이야? 니가 살 집이야? 서연아빠 집이 내 집이지. 나도 부지런히 왔다갔다 할거니까. 승민아니 그래도 누가 살지는 정해야... 서연(끊는) 우리 아빠 어쩌면 오래 못살지도 몰라. 멈칫. 놀라는 승민. 승민근데... 굳이 왜 집을 지어? 서연그래서. 승민... ? 서연철 들고 아빠랑 같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어. 승민... 서연집 짓고 한 2,3년 같이 살다가... 그러다 보내드리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랬어. 그러면 한은 안되겠다. 그랬어. 승민... 서연시간이 별루 없을 지도 몰라서... 그래서 굳이. 승민... 서연아빠한테 마지막 집일 테니까. 제대로 지어 주고 싶어. 예쁘고 좋은 집으로. 한 잔 털어 넣는 서연. 승민(보다가) 그럼 너한테 예쁘고 좋은 집이 뭔데? 서연근데 그렇게 물어보면 뭐부터 얘길 해야할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웃는) 승민작은 거부터. 서연... 작은 거? 승민예를 들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뭐야? 서연(생각하는) ... 화장실 가지. 승민그럼 그거부터. 화장실부터. 아무 생각 없이 말고. 생각하면서. 골똘히 생각하던 서연. 조심스레. 서연난 화장실 어두운 게 그렇게 싫더라. 낮에도 불 켜야 되고. 16. 여러곳. 껌껌한 화장실. 서연이 불을 켜면 밝아진다. 막 일어난 듯. 거울 앞에서 양치질하는 서연. 샤워꼭지 앞에 서서 샤워하는 서연. 서연>욕조. 물 받고 목욕하고 싶어. 푹 몸 담그면서. 커피 한잔 들고 커튼을 여는 서연. 밖은 벌써 한 낮이다. 서연>밤 새고 낮에 자는 일도 많으니까 침실은 너무 밝지 않게. 방송국 분장실에서 혼자 자기 머리를 만지는 서연. ENG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는 서연의 모습. 설계사무소. 스케치를 하는 승민. 슥슥- 그리다가 북북- 다시 지우고. 서연>거실 창은 좀 넓었으면 좋겠어. 시원하게. 서연>문을 여닫이 말고 미닫이로. 아빠가 힘들어 해. 좁은 봉고차 안. 스탭들과 함께 비좁게 타고 가는 서연. 어느 시골 길. 촬영을 기다리다 지쳐 새우잠을 자고 있는 서연. 서연>테라스가 길게. 거기다 테이블도 놓고 그럴 수 있게. 승민>쉬는 날은 주로 뭐해? 서연>뭐. 책도 보고. 청소도 하고. 거실. 맥주캔을 홀짝이면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서연. 아주 조금 열리는 오피스텔 픽스창. 그 앞에 건조대를 놓고 빨래를 말리는 서연. 서연>창 좀 시원하게 활짝 열리게. 빨래는 야외에 널 수 있게. 서연>아빠가 정원 가꾸는 걸 좋아하니까 안방에서도 마당이 잘 보이게. 늦은 밤. 병실. 아버지 등을 두드리고 있는 서연. 설계사무소.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도면을 그리는 승민. 17. 설계사무소. 회의실. 낮. 도면과 함께 매스 모델 3개가 놓여 있다. 그 앞에 승민과 은채가 서있다. 승민은 나름 양복도 입었다. 승민이 흠... 헛기침과 함께 첫번째 안을 보이면서. 승민호리젠틀한 요소로 파사드를 강조해 본 거야. 리빙룸 창을 페러럴하게. 솔리드한 벽을 코너로 몰아서... 승민이 두번째 안을 들고. 승민이건 스페이스를 디바이드 해 본 건데, 리빙룸을 센터로 해서... 승민이 세번째 안을 들어 보인다. 승민결국 내 생각도 이게 정답인 거 같은데... 레벨을 플렉서블하게 구성해 본 거야. 그러면 리빙룸은 퍼브릭해지고. 서연... 승민마스터룸이 프라이빗해지면서... (눈치보는) 서연이 가만히 설계안을 보다가. 서연왜 죄다 영어야? 영어마을 짓니? 18. 오래된 집. 낮. 집 주위를 돌아보는 서연. 그 뒤로 씩씩대며 따라오는 승민. 승민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데? 서연그냥 좀 낯설어. 아빠집 같지가 않아. 너무 딴 집 같애. 승민새로 짓는데 낯설지, 그럼 친숙할까? 도대체 취향을 모르겠네. 니가 트렌드를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 이런 게 있어 보이는... 서연아 진짜. 내가 맘에 안든다는데, 왜 자꾸 가르치려구 들어? 승민... (참자) 서연그래두 너 오늘 옷은 예뻤어. 옷은. (킥킥 웃는) 어. 이거다. 서연이 문득 멈춰 선 곳. 보면... 측벽 한 구석. 희미하게 남아 있는 84, 85... 빗금들. 서연어릴 때 여기서 키 재고 그랬었거든. (웃는) 참 작았다. 지금은 허리춤에서 끝나는 옛 기록들. 승민이 문득 디카를 꺼내 찰칵. 사진을 찍는다. 서연이거 타고 올라가서 옥상에서 혼자 소꿉놀이 하고... 서연이 옥상을 올려다본다. 녹슨 철제 사다리가 끊어진 채 대롱 걸려있다. 서연그런 거 있잖아. 비밀장소 그런 거. 다락방 같은 거. 그러다가 6살 땐가? 옥상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보니까 나무에 감이 열린 거야. 어린 마음에 손 뻗으면 딸 수 있겠더라고. 그러다 그냥 머리부터 꼬꾸라져서... 승민... 서연나 진짜 죽을 뻔 했었대. 그때 아빠가 막 나 들쳐 업고 뛰고. (정수리 굳이 보여주며) 보여? 여기 땜빵. 그때 흉터. 서연이 쪼르르 몇 걸음 옮겨 가리키는 마당 한 구석. 시멘트로 만들어진 수도꼭지 기단이 있다. 서연이거. 우리 아빠가 직접 만든 거다. 기단 귀퉁이. 시멘트 위로 조그만 발자국. 서연굳기 전에 내가 밟아서... 나 4살 때던가... 엄청 울었는데... 승민무슨 4살 때 기억이 나? 천재야? 서연기억 나. 여기서 아빠가 나 세수 시켜주고 그랬던 거... 승민... 서연여름에 비 올 때 마루에 누워 있으면, 쾌쾌한 냄새. 나무 바닥 냄새. 승민... 서연그런 거... 다 기억 나. (희미하게 웃는) 서연, 스윽- 조그만 발자국에 발을 대 본다. 서연... 나 많이 컸지? 발끝을 내려 보는 서연. 잠시 말이 없다. 19. 설계사무소. 밤. / 낮. 스윽- 폼보드를 커터칼로 자르는 승민.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사무소에 승민 혼자 모델을 만들고 있다. 제법 집처럼 보이는 큼지막한 모델. 날이 밝은 회의실엔 어느덧 완성된 모델이 서 있다. 또각또각.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서연. 다가와 모델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여기저기 자세히. 승민>어. 언제 왔어? 커피 한 잔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오는 승민. 서연이거... 우리집이야? 승민이 커피 한모금 홀짝이면서. 승민생각해 봤는데... 증축을 하자. 서연증축? 승민이 집을 없애지 말고. 적당히 털고. 그 옆에 새로, 또 적당하게. 증축. 서연글쎄... 너무 낡지 않았어? 승민집 멀쩡한데 뭘. 그리구... 이거 아깝잖아? 승민이 들어 보이는 건 핸드폰 액정 안. 사진 한 장. 시멘트 수돗가에 남아 있는 서연의 어릴 적 발자국. 빙긋 웃는 서연. 서연그럼 좀 싸지나? 화면 바뀌면. 모델 앞에서 도면과 함께 설명하는 승민. 승민이게 원래 있는 집이고. 이쪽이 증축하는 부분. 원래 있던 방 두개를 터서 아버지 안방을 크게 만들고. 그 옆에 새롭게 주방과 거실이 확장 되는 걸로. 현재 21평. 새로 증축하는 면적이 9평. 그래서 총 30평. 서연... 승민재료는 원래 집에 있는 벽돌. 새로 지어지는 집은 나무.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유리. 이렇게 3가지로. 설명에 따라 모델을 찬찬히 보는 서연. 승민원래 있던 아버지 집 옆에, 새로 짓는 딸의 집이 조금 물러나서 나란히... 어때? 좀 있어 보여? 모델을 유심히 보던 서연이 씨익 웃는다. 서연... 내가 아빠 등에 업혀 있는 거 같애. 20. 커피전문점. 낮. 도면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는 셋. 승민, 서연, 은채. 서연근데 방이 겨우 2개야? 너무 적지 않나? 승민아버지 안방. 니 방. 그럼 됐지 뭘. 작은 방 여러 개보다 안방이랑 거실을 그만큼 넓게 써. 그게 훨 나. 서연손님이라도 오면... 사랑방. 그런 거 있잖아. 승민무슨 대감집이야? 사랑방이 있게. 서연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몰라? 승민그래서 트러블 생기는 거 아니야. 괜히 사랑방 같은 거 있어서. 서연트러블이래. 교양하고는. 승민그렇잖아? 애궂게 애만 중간에 왔다갔다. 애가 무슨 죄야. 하튼 그런 얘기들이 문제야. 괜히 아름다운 척. 착한 척. 현실을 왜곡되게. 은채하긴 인어공주도 생각해 보면 그거 스토커잖아요. 밤에 바다에 떠서 막 바라보고. 그것도 반은 생선이. 완전 무서워. 승민잠자는 공주는 왜 꼭 키스를 해줘야 깬대? 변태야? 애들 보는 건데 야하게. 그것도 무쟈게 오래 잔 애잖아. 그 입 냄새 어떡할꺼야. 왕자가 비위도 참 좋아. 서연이 승민을 가만히 보다가. 서연너 왜 이렇게 뺀질뺀질해졌어? 옛날엔 안 그랬잖아? 은채어머. 팀장님 옛날엔 어땠는데요? 서연흉했지. 엄청 흉했지. 여자들한테 인기도 없었고... (킥킥) 은채그건 지금도 그래요. (킥킥) 승민둘이 사겨? 콤비야? 은채근데... 처음에 두 분 서로 어떻게 알게 됐어요? 승민, 서연 서로 마주보는. 은채그찮아요? 과도 다르고. 뭐가 겹치는 게 없는데. 소개팅이라도 했나? 서연이 피식 웃는다. 서연(승민 보는) 너 얘기 안했어? 그게... 얘가 나를 하도 쫓아와서. 승민이건 또 무슨 창의적인 소릴까? 서연에이. 뭐 어때, 이제와서. 괜찮아. 고백해. 사람이 솔직해야지. 승민뭔 소리야? 숙제 도와달라고 니가 먼저 따라왔잖아. 막. 서연얼씨구. 21. 과거. 강의실. / 버스 안. 낮. 화면 가득. 서울시 전도가 보인다. 강교수가 그 앞에 서서 스티커와 싸인펜으로. 강교수난 집에서. 요기. (스티커를 붙이고) 38번 버스를 타고. 요렇게 (싸인펜으로) 요렇게. 요래, 요래... 해서 여기. (스티커를 붙이는) 학교로 오지. 지도 위에 스티커 두 개와 그 사이를 잇는 삐뚤빼뚤한 선이 하나 생겼다. 강교수한 명씩 나와서. 자기가 집에서 학교 오는 길을 표시해봐. 이렇게. 버스 안. 한쪽 구석에 승민이 앉아 있다. 대학 1학년의 어린 모습이다. 강교수자네는 집이 청담동이야? 지도 앞에 서 있는 재욱. 고개를 끄덕인다. 강교수그럼 노유동이 어디야? 재욱... 모르겠는데요. 강교수(가리키는) 요기잖아. 요기. 강 건너 윗동네도 몰라? 재욱... 강북은 잘 몰라서... 강교수근데 1학년 아니지? 에프였어? 버스 안. 승민이 힐끗힐끗 어딘가를 훔쳐본다. 강교수자네는 정릉 살아? 뒷줄에 앉아 있던 승민, 정릉이란 말에 고개를 번쩍 든다. 보면... 서연이 지도 앞에 서 있다. 금테 안경을 쓴 지금과 사뭇 다른 어린 서연. 화장기 전혀 없는 수수하고 풋풋한 모습이다. 강교수정릉이 누구 능이야? 서연... 정조? (눈치 보는) ... 정종? 강교수자기 동넨데... 그런 것도 몰라? 웃는 학생들. 고개를 숙이고 얼굴 빨개진 서연. 버스 안. 승민이 힐끔거리던 곳엔 서연이 앉아있다. 서연은 그저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질끈 묶은 긴 머리만 보이는 서연의 뒷모습을 승민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도 앞에 선 승민. 이미 서연이 붙인 같은 곳, 정릉에 스티커를 또 하나 겹 붙이고... 서연이 그린 선 위로 하나 더 겹쳐 그린다. 같은 동네. 같은 동선. 강교수살긴 사는데 관심이 없어. 자기가 사는 곳을 너무 모른다고. 자기 사는 동네도 잘 모르고. 서울은 더더욱 모르고. 버스가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어두워진 실내. 서연 자리 차창에 서연의 얼굴이 반사되어 보인다. 아무 표정 없는 서연. 건너편 승민이 그저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승민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서연. 승민이 얼른 고개를 돌린다. 강교수>다음 시간까지 리포트가 있는데, 자기 동네를 여행해 보는 거야. 습관적으로 매일 지나치는 동네 건물들, 길들을 유심히 한번 봐봐. 승민 자리 차창에 건너편 서연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인다. 승민이 밖을 보는 척 하면서 서연을 보고 있다. 강교수>살고 있는 곳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건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야. 버스가 터널을 빠져 나온다. 가을 햇살에 서연의 모습이 지워진다. 강의실. 커다란 서울시 지도엔 빨간 점들이 별자리처럼 박혀있다. 22. 과거. 강의실 앞. 낮. 우르르. 강의실에서 나오는 학생들. 퉁퉁한 살집의 동구가 재욱을 졸졸 쫓으며 나온다. 동구형. 밥 사주세요. 밥! 재욱넌 내가 식권으로 보이니? 맨날 나만 보면 밥을 사달래... 서연>저... 오빠... 저 갈께요. 일제히 돌아보면... 머뭇머뭇, 인사 하는 서연. 재욱어... 서연아. 들을 만 해? 어렵진 않아? 서연아뇨... 뭐... (수줍게 웃는) 그냥... 재욱힘들면 얘기해. 밥 사줄께. 서연네... (목 인사 하는) ... 갈께요... 승민이 멀어져가는 서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동구누구예요? 재욱방송반 후배. 음댄데... 동구음대가 왜 건축과 수업을 들어? 재욱개론 수업은 원래 타 과생들도 많이 들어. 그래서 물이 좋잖아. 동구아. 그래서 굳이 일부러 한 번 더 들으시는...? 23. 과거. 버스 종점. 낮. 종점으로 버스가 들어온다. 승민이 내리고, 잠시 후 서연도 내린다. 슬쩍 뒤를 힐끔거리는 승민. 신경 쓰는 모습이다. 납뜩이>넙죽아! 근처를 지나던 납뜩이가 승민을 알아보곤 반갑게 다가온다. 멈춰 선 승민. 그 사이 서연이 승민을 앞질러간다. 승민이 그제서야 서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멍... 하니. 납뜩이(서연을 보는) ... 아는 애야? 승민어? 아니. 아니. 24. 과거. 동네. 낮. 어지러운 전신주 사이로 야트막한 주택들. 납뜩이와 승민이 나란히 걷고 있다. 승민(웃는) 공부는 잘 돼? 납뜩이재수하는 것도 서러운데 공부까지 열심히 해야 되냐? 넌? 애인은 생겼어? 승민무슨 애인이야... 납뜩이납뜩이 안되네. 납뜩이. 대학생이 연애를 안 하면 뭘 해. 그럼? 골목길을 돌자 앞에 보이는 독서실. 입구에 서 있던 교복 여고생. 납뜩이한테 반갑게 손을 흔든다. 승민누구야? 아는 애야? 납뜩이다 큰 애한테 애가 뭐야. 니 형수님이시다. 형수님. 승민... 고삐리잖아? 납뜩이그럼 재수생이 고삐리를 사귀지, 누굴 사궈? 중삐릴 사귈까? 납뜩이가 가방에서 무스를 꺼내더니. 납뜩이헤어가 이게 뭐니? 대학생이. 이 열라 납뜩 안되는 새끼야. (건네는) 미팅 나갈 때 쪼금씩 아껴 써. 승민이게 뭔데? 납뜩이일단 흔들고 빗에다 푸욱... 해서... 25. 과거. 승민집. 낮. 와장창. 냉장고에서 반찬통 하나가 떨어져 승민의 발등을 때린다. 아픈 표정으로 냉장고 안을 보면 각종 반찬통, 검은 비닐들로 꽉꽉 차 있다. 승민엄마. 냉장고 안에... 이런 거 좀 버리면 안돼? 엄마>시끄러. 와서 이거나 좀 도와. 마당에서 승민 엄마가 이불 빨래를 널고 있다. 거친 손과 자글한 주름살. 억척스러운 세월이 느껴진다. 26. 과거. 승민집 앞. 낮. 가파른 콘크리트 계단주위로 층층이 서 있는 주택들. 그 중 작은 주택 한 채. 짙은 녹색으로 반짝반짝 새 칠을 한 철제 대문을 열고 나오는 승민. 대문 앞에 붙여진 종이 한 장. <뺑끼칠 주의! 기데지 마시요.> 매직으로 쓴 거친 글씨. 엉망인 맞춤법. 승민이 에이... 종이를 떼어 버린다. 27. 과거. 동네. 낮. 승민이 사진을 찍으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스완 미용실, 금보당을 지나 경기 쌀집을 끼고 돌면... 소담한 초등학교. 28. 과거. 초등학교. 낮. 승민이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다. 운동장엔 깔깔 축구공을 차는 학생들. 조깅삼아 운동장을 도는 아줌마들. 철봉에 매달린 꼬마가 하나. 둘. 외치면서 턱걸이를 한다. 작은 체구를 씩씩하게 잘도 들어올린다. 파인더에 눈을 대고 구도를 잡는 승민. 다섯을 외칠 때쯤 막 셔터를 누르려는데... 프레임 안으로 서연이 들어온다! 놀란 승민이 그대로 얼어붙은 채 카메라로 서연을 바라본다. 꼬마가 일곱에서 포기하고 내려온다. 구경하던 서연이 폴짝 뛰어 봉을 잡고 낑낑.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내려온다. 손바닥을 탁탁 털며 획- 승민쪽을 바라본다. 승민은 그저 쥐 죽은 듯. 그렇게 가만히... 축구공 하나가 서연 앞으로 떼구르르 굴러온다. 공을 차 달라는 학생들. 서연이 씩- 웃더니 공을 차며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승민이 침을 꿀꺽. 사라진 서연을 따라 카메라를 천천히 돌려보는데... 서연은 보이지 않는다. 가버린 건가...? 그때 불쑥! 서연의 얼굴이 파인더 꽉 차게 들어온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는 승민. 보면... 바로 옆에서 승민을 내려 보고 있는 서연. 무안하게도 그저 빤히... 바라 보고 있다. 민망해진 승민이 아무렇지 않은 척. 툭툭. 털며 스윽- 일어난다. 아무말 없이 나란히 서 있는 둘. 극도로 어색한 상황. 승민이 손목시계를 보며. 승민(혼잣말) 어이쿠. 벌써 시간이... 근데 손목엔 시계가 없다. 서연은 얄밉게도 여전히 빤히... 본다. 관조 모드로 돌입한 승민.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듯 뒤돌아 가려는데... 서연저... 알죠? 승민... 예? (돌아보는) 서연건축학 개론... 같이 듣지 않아요? (다가오는) 승민(물러나는) ... 서연그날 버스도 같이 타고 왔는데. 승민아~ 그랬어요? 29. 과거. 동네. 낮. 승민과 서연이 걷고 있다. 같이 걷는 건지, 따로 걷는 건지 애매한 간격을 유지한 채. 한 발 앞선 승민 뒤를 서연이 꾸준히 쫓는 모습이다. 서연여기서 오래 살았어요? 승민뭐... 태어나서 계속... 서연와. 그럼 동네 잘 알겠다. 승민예. 뭐... 서연난 이사 온지 얼마 안돼서 하나두 모르는데... 서연이 문득 걸음을 멈춘다. 보면... 골목의 막다른 끝. 추레한 담벼락 뒤로 굴뚝이 서 있는 어느 집 앞. 서연여긴 무슨 집이에요? 승민아. 여기 아무도 안 살아요. 빈 집이에요. 서연왜요? 승민(당황) 예? 왜냐면... 그러니까... 그러게. 왤까요? 서연들어가 볼래요? 승민(놀라는) ...... 왜요? 서연그냥. 집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하고. 승민남의 집인데. 어떻게 함부로. 에이. 그리고 잠겼을 거예요. 서연이 가볍게 대문을 밀자 끼이익 소리 내며 열린다. 방긋 웃는 서연. 할 말 없는 승민. 서연이 스르르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저 멍 하니 서 있는 승민. 서연이 빨리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승민이 주위를 두리번. 망설이다가 슬그머니 따라 들어간다. 30. 과거. 빈 집. 낮. 새마을 운동의 기운이 남아있는 개량식 주택. ㄷ자형 배치. 그 가운데 조그만 마당.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마루로 성큼 올라가는 서연. 집안을 둘러본다.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문머리에 달려 있는 가족사진들. 숄 달려 있는 갓등. 그 중 괘종시계가 보인다. 기다란 추가 늘어진 채 멈춰있다. 서연이 뚜껑을 열어 태엽을 감는다. 따르륵따르륵. 추를 슬쩍 밀어주니 째깍째깍. 시계가 가기 시작한다. 승민(걱정스런) ... 남의 집인데... 허락도 없이 막... 서연뭐 어때? 죽은 거 살려준 건데. 서연이 마루턱에 걸터앉으려는데... 승민... 잠깐만요. 승민이 신문지 한 장을 주워 서연 앞에 깔아준다. 나란히 앉은 둘. 서연1학년이죠? 승민... 예. 서연나두 1학년인데. 승민근데... 음대가 건축학개론은 왜 들어요? 서연왜? 들으면 안돼? 승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서연어! 근데 나 음댄지 어떻게 알았어? 승민(아차) 아... 재욱이형 한테 들었어요. 서연아~ 재욱 오빠. 승민(당황) 예. 재욱이형한테. 살짝. 얼핏. 당황한 승민이 숨을 돌리는데. 서연음... 내가 생각을 한번 해봤는데... 승민... 서연우리 이렇게 하자. 난 건축과도 아니고, 이 동네도 잘 모르고... 근데 넌 건축과고, 여기서 오래 살았고... 그러니까... 숙제를 같이 하는 거 어때? 그럼 공평하지? 승민... 예? 그게... 뭐가 공평하다는 건지. 전 잘...? 서연근데 왜 말 안 놔? 동갑인데. 승민... 먼저 노세요. 서연나 아까부터 놨잖아. 말 논 거 안보여? 승민(비로소) ...! 서연너두 말 놔. 승민... 네. 알았어요. 서연그러니깐... 노라니깐. 승민알았다구요! 노면 되잖아요! 31. 과거. 강의실. 낮. 칠판 앞에 강교수. 강교수이번엔 가장 먼 곳을 가보는 거야. 가장 먼 곳...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먼 곳이 어딜까... 생각해 본 적 있어? 32. 과거. 승민집. 아침. 승민 어머니가 머리에 구루뿌를 말고 있다. 승민이 후다닥 마루로 뛰어나온다. 승민엄마. 파란색 남방... 그거 안 빨았어? 어머니안 빨았는데. 승민그거 오늘 입어야 되는데... 어머니지금 빨아서 언제 입어? 33. 과거. 화장실. 낮. 납뜩이가 준 왁스를 들고 있는 승민. 조심스럽게 흔들고 부욱... 무스가 뭉쳐진 빗으로 머리에 스윽- 그리고 거울을 보면... 올빽의,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승민이 다시 머리를 감기 시작한다. 거실 한 켠. 선풍기에 걸린 파란 남방이 팔랑거린다. 34. 과거. 버스 안. 낮. 맨 뒷자리에 서연과 승민이 앉아 있다. 승민이 버스 노선도를 보면서 갯수를 센다. 정릉이 종점이고, 쭉 가서 반대편 종점은 개포동으로 끝나는 옛날 버스 노선도. 승민개포동까지... 42개. 서연... 개포동? 그거 미사일 이름 아닌가? 35. 과거. 아파트 옥상. 낮.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꽂고 나란히 서 있는 둘. 멀리 바라본다. 개포 주공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 그땐 타워팰리스도 없었고, 아이파크도 없었던... 그런 예전 풍경. 서연이상해. 저렇게 집들이 많은데, 저 중에 내 집이 하나 없다는 게. 승민어른 되면 저거 하나 사려구 평생 돈 모은 다잖아. 서연서울은 정말 복잡하구나. 사람도 너무 많고... 승민넌 고향이 어디야? 서연글쎄... 어디라고 해야 될까. 초등학교 때까진 춘천 살다가... 그후론 하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서. 승민... 그럼 부모님은? 서연우리 아빠는 지금 어딨는지 몰라. 승민(놀라는) ... ? 서연어쩌면... 한 대서양쯤? 승민... ? 서연(웃는) 우리 아빠는 배 타. 유조선 선장. 마도로스. 승민그럼 여기엔 엄마랑 같이 있는 거야? 서연엄만 돌아가셨어. 여긴 친척집에 잠깐 있는 거야. 승민... 어... 미안... 서연(웃음) 니가 뭐가 미안해? 우리 엄마가 너 때문에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승민... 서연이번에 아빠 들어오면 독립시켜 달라고 그래야지. 내 방도 없고, 친척들 눈치 보이고. 더는 이렇게는 못살겠다. (웃는) 승민, 뭔가 동질감을 느낀 듯. 승민난 아버지가 옛날에 돌아가셨어. 그 얘기하면 친구들도 그래. 지들이 왜 미안해? 서연그지? 괜히 할 말 없으니깐 그러는 거야. 서연의 씨디피에서 갈라나온 얇은 이어폰 줄로 이어진 둘. 이어폰에서 작게 새어 나오는 노래 소리. 나른한 오후. 가볍게 부는 바람. 고즈넉한 풍경이다. 승민근데... 이거 누구 노래야? 서연이거? 전람회를 모른단 말이야? 기억의 습작. 승민아... 들어본 거 같애. 서연좋지? 내가 제일 좋아해. 서연이 콧노래로 조그맣게 노래를 따라 부른다. 승민이 그런 서연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을 햇살을 역으로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홀린 듯 멍... 하니 서연을 훔쳐보는 승민. 36. 여러곳. 설계사무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도면을 보고 있는 승민과 서연. 승민4미터라니깐. 서연그니까 그게 어느 정도냐구? 상상이 안 돼. 층고가 높은 어느 카페. 천정을 올려보는 둘. 승민... 한 이정도? 서연음... 이왕 높이는 거, 더 높으면 안되나? 승민높다고 다 좋은 게 아니야. 냉난방 골치 아파져. 서연집. 맥주 홀짝 거리면서 도면을 보고 있는 서연. 식당. 승민 앞에 서연. 밥 먹으면서 도면을 보고 있는. 서연어. 근데. 잠깐! 이거 뭐야? (도면을 가리키는) 승민주방이 아일랜드식으로. 원래 있던 집 외벽이 새로 생기는 주방 벽으로. 오래된 집. 측벽 옆에 선 둘. 승민바로 여기. 주방이 되고, 이쪽으로 새로 거실 벽이 생기고. 서연그럼 거기에 책장을 짤까? 벽 전체를 꽉 채워서. 그럼 예쁠 거 같은데. 승민책이 그렇게 많어? 서연아니... 뭐 이제부터라도 좀 읽어볼까... 해서... 승민먼저 좀 읽구. 응? 병실. 아버지 곁에서 도면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서연. 신나한다. 오래된 집. 서연이 도면을 들고 승민 뒤를 졸졸. 서연어. 근데. 잠깐! 이건 또 뭐야? (도면을 가리키는) 승민거실창이잖아. 여기서 그대로 테라스랑 마당으로 이어지게. 서연(이해되는) 아... 승민날씨 좋은날 활짝 열어놓고, 테라스에서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뭐... 책... 두 읽으려면 읽고. 서연읽을 거야. 열라 많이 읽을 거야. 승민그럼. 이제라도 읽으면 돼지. 책도 막 열심히 읽고. 독후감도 열라 쓰고. 일일 계획표도 짜고. 곤충 채집도 하고... 다 해. 다. 생각만 해도 신난다. 늦은 밤. 사무소에서 승민이 혼자 모델을 고친다. 모델이 이젠 제법 디테일하게 윤곽을 갖춰가고 있다. 37. 오래된 집. 낮. 쿵. 와르르. 큰 해머가 벽돌 벽을 무너뜨린다. 공사가 시작됐다. 오래된 집은 털어 내는 중이고. 증축되는 거실은 기초공사가 한창이다. 마당에 서 있는 승민과 서연. 서연잘 한 거 같애. 살면서 자기 집을 지어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아마 내 평생 가장 대단한 일일 꺼야. 이게. (웃는) 승민이제 두 달정도면... 서연어. 근데. 잠깐! 승민(멈칫) ... 서연이건 뭐야? (도면을 가리키는) 승민, 긴장된 표정으로 도면을 들여다보다가... 승민... 화단. 서연... ? 승민테라스 바로 앞에 조그만 화단. 책 읽으면서 꽃도 보고. 그러라고. 서연... 승민너 꽃 키우는 거 좋아하잖아. 가만히 승민을 보다가... 빙긋 웃는 서연. 서연... 그런 걸 다 기억하네? 시선을 느꼈는지 승민도 서연을 바라보는. 그러다 둘이 피식 웃는. 38. 바다. 새벽. 탁 트인 바닷가. 수평선 위로 먼동이 트는 이른 새벽. ENG 카메라 앞에 서연. 바다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고 있다. 화면 바뀌면 촬영을 마치고 철수준비중인 스탭들. 서연은 근처 건어물 상점을 기웃거리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한 소리들. 싸게 드릴께요. 보고 가세요. 서연이 핸드폰을 꺼내 잠시 고민. 전화를 건다. 서연어. 미안. 자고 있었어? 미안. 미안. (잠시) 딴게 아니라... 너 오징어가 좋아? 쥐포가 좋아? (잠시) 여기 속초. 촬영 때문에 왔는데... 여기 새벽 바다가 너무 예쁘다. 잠시 가볍게 웃는 서연. 그러다가... 서연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 (잠시) 공사도 시작했는데... 너랑 술 한 잔 할까 해서. (잠시) 알았어. 내가 쏠께. 그럼 이따 저녁때. 응. 응. 그래. 전화 끊는 서연. 배시시 웃는다. 그 뒤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피디, 서연에게 다가와. 피디선배. 여기서 아침 드시고 서울 올라가시죠? 서연그래. 그러자. 배 고프다. (웃는) 피디근데... 선배.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죠? 서연... 응? 피디뭐가 있긴 있는데... (웃으면서 보는) 서연있긴 뭐가 있어? (쑥스럽게 웃는) 39. 서연집. 밤. 창밖으로 비가 온다. 거울 안의 서연. 외출 준비가 끝난 모습. 매무새를 살피고 머리 모양을 다듬는다. 40. 와인바. 밤. 빗줄기가 굵어졌다. 구석 자리에 서연이 혼자 앉아 있다. 스마트폰을 꺼내 놓고 만지작. 잠시 후 승민이 들어온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서연. 그 뒤로 따라 들어오는 은채. 승민(와서 앉는) 내가 같이 오자고 그랬어. 은채도 수고했잖아. 은채(앉는) 저 껴도 되죠? 서연에이. 그럼. (웃어 보이는) 화면 바뀌면 와인잔을 홀짝 거리는 셋. 화기애애하다. 서연너랑 그 동네에서 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니가 내 집을 지어줄 줄 누가 알았겠어? 승민그니까 니가 복 받은 거지. 서연이 웃으며 승민잔을 채워준다. 서연근데 넌 연애 안해? 승민(피식 웃는) ... 서연내가 후배 소개 시켜줄까? 말해봐. 너 어떤 애 좋아하는데? 승민예쁘고 착한 애. 서연(피식) 그런 귀한 애가 널 좋아하겠니? 깔깔대는 은채. 서연도 같이 깔깔. 승민하튼 보면 둘이 잘 맞어. 보면. (일어서는) 서연어디가? 승민화장실. 화장실. 은채와 둘이 남은 서연. 잠시 어색. 은채... 저... 결혼해요. 은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순간 당황한 서연. 이내 웃는. 서연(놀란) 어머! 정말? 언제? 은채아마... 연말쯤? 늦어도 연초에는... 서연축하해. 근데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었어? 은채얼마 전에 결정 났어요. 결혼하고 곧장 미국 가기로. 서연미국 어디? 은채뉴욕이요. 가서 저는 공부하고. 오빠는 취업하기로. 운이 좋았어요. 서연야... 잘됐네. 그 남자 땡잡았다. 이렇게 예쁜 은채씨를... (웃는) 은채(웃는) 그죠? 돌아 온 승민, 자리에 앉으며... 승민뭐가 이렇게 신났어? 서연아니 글쎄... 은채씨가... 은채(자르는) 팀장님 얘기 했어요. 승민나 뭐? 은채(환하게 눈웃음 짓는) 땡 잡았다고. 순간. 엥?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서연. 은채그게 저에요. 예쁘고 착한 애. (웃는) 막 이래.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다가. 서연아... 그랬구나. 야. 전혀 몰랐어. 왜 진작 얘길 안했어? 은채회사에도 비밀이에요. 아무도 몰라요. 승민... 은채그래두 언니는 아셔야 될 거 같아서. 서연이 과도하게 웃으며 말이 빨라진다. 서연잘됐다. 둘이 어울려. 에이. 응큼한 놈.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를 두고. 그랬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하하. 은채근데요... 오빠 옛날에 첫사랑 있었다던데. 그거 누군지 아세요? 물어봐도 얘길 안해줘. 궁금하게. 1학년 때라던데. 서연(어색하게 웃는. 승민에게) 그게 누구야? 내가 아는 애야? 승민됐어. 서연궁금하잖아. 누군데? 은채얘기 좀 해봐. 쌍년이었다며? 순간. 썰렁해지는 분위기. 잠시 서로 말 없는. 은채어머. 그거 뭐에요? 서연 옆 자리에 놓여있는 오징어와 쥐포 상자. 서연아. 이거... 속초에서 사온 건데. 서연이 승민에게 상자를 내민다. 은채제건 없어요? 서연둘이... 나눠 먹어. 은채(승민에게) 그럴까? 우리 반반 나눌까? 41. 택시 안. 밤. 택시 안의 승민과 은채. 은채그러니까... 원룸인 거잖아? 승민... 은채달랑 방 하나에서 먹고 자고. 그렇게 어떻게 사냐? 그래두 신혼인데... 승민그 얘기 끝났잖아. 은채우리 이모가 그러는데 이스트빌리지 쪽이 살기 좋다고. 거기가 학교도 가깝고. 승민알면서 왜 그래? 형편이 그렇잖아. 첨엔 좀 힘들더라도... 은채그래서 우리 아빠가 도와준다잖아. 푹. 한숨 쉬는 승민. 은채예민하게 굴 일 아니잖아. 한번 생각해 보는 게 그렇게 힘들어? 말 없는 승민. 은채, 팽팽한 표정. 창밖으로 흘러가는 서울의 야경. 42. 병실. 밤. 아버지고작 방 한 칸 가지고. 이모라는 사람이.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 옆에 서연이 빨래를 갠다. 아버지지 조카가 대학 들어가서 잠깐 몇 달 신세지자는 걸. 그렇게 야박하게. 서연(웃는) 다 지난 얘기해 뭐해. 아버지죽은 지 언니 딸인데. 생판 남한테도 그렇게는 안하겠다. 서연... 아버지내가 하도 화가 나서, 당장 너 집에서 나오라고 그런 거야. 니 이모가 괘씸해서. 서연그때 집 담보로 대출 받았지? 요번에 등기 떼보니까... 딱 그거더라. 아버지... 서연그래두 그렇지. 빚까지 져가면서 나한테 뭐하러 그렇게 비싼 데를 얻어줬어? 아버지너 기죽을까봐. 서울 애들한테 기죽지 말라고. 피식. 웃는 서연. 서연하여튼 참... 집에 한이 많어. 우리 아빠는. 43. 과거. 서연 이모집. 밤. 방 안. 책상에 앉아 있는 서연. 가만히 듣고 있다.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 사촌동생>공부를 할 수가 없잖아! 공부를. 이모>쉿. 듣겠다. 사촌동생>들으라고 그래! 내 친구 중에 자기 방 없는 애가 있는 줄 알아? 이모>알았어. 알았어. 쫌만 기다려. 쫌만. 잠시 후. 사촌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잔뜩 위축된 서연, 눈치만 보는. 사촌동생이 신경질적으로 침대에 풀썩. 눕더니 날카롭게. 사촌동생언니. 나 자야 되는데. 서연어. 알았어. 불을 끄는 서연. 캄캄해진 방. 서연이 숨죽이며 조심스레 책상 스탠드를 켠다. 44. 과거. 빈 집. 새벽. 멀리 여명이 밝아 온다. 혼자 밤에 빈 집에 마루에 앉아 있는 서연. 그저 우두커니 하늘만 바라보는. 45. 과거. 재욱 오피스텔. 낮. 모델을 만들고 있는 동구와 승민. 동구가 지겹다는 듯 침대에 풀썩 누워버린다. 동구형 부럽다. 이런데서 설계하면 아이디어 팍팍 나올 꺼 같애. 재욱의 원룸 오피스텔. 세련된 가구들, 고급 오디오, 넓은 제도판. 모든 게 럭셔리 하다. 재욱이 컴퓨터 앞에서 유니텔 채팅하고 있다. 신기한 듯 뒤에서 기웃대던 승민. 승민새로 사신 거예요? 재욱(씩 웃는) 펜티엄에 하드 일기가. 승민일기가... 요? 재욱(답답한) 천메가. 천메가. 승민(깜짝 놀라는) 천메가! 와... 천메가면 평생을 써도 다 못 쓰겠다. 감탄의 눈빛으로, 재욱 어깨너머 컴퓨터를 바라보던 승민. 동구>... 형. 이거 뭐야? 돌아보면 동구. 침대 이불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데... 여자 스타킹. 화면 바뀌면. 탕수육에 짜장면 먹고 있는 세사람. 재욱그러니까 별거 없어. 여자는 일단 술을 먹여서 취하게 만들어. 동구그리구요? 재욱뭘 그리구야? 취했잖아? 그럼 업어. 그리고 침대에 뉘여. 끝. 동구그럼 저 스타킹두 그렇게? 재욱아우. 밥이나 쳐드세요. 그렇게 사달라며. 얌전히 있던 승민. 조심스럽게. 승민형 써클 재밌어요? 재욱(보는) 왜? 승민그냥... 궁금해서요. 재욱서연이 알지? 걔도 방송반이잖아. 승민... 누구요? 재욱그때 인사했잖아. 방송반 후배. 동구(일어나는) 아! 걔~ 음대! 걔 괜찮던데... 승민(정색하는) 걔가 예뻐? 난 모르겠던데. 재욱아직 화장도 안하고, 좀 촌스럽지만. 그런 애들이 2학년 되면 확 예뻐진다고. 이 좆도 모르는 것들아. 빨리 쳐 먹고. 이제 일 해. 승민이 괜히 시크한 척. 툭. 승민그럼 걔... 써클에 남자친구도... 있겠네요? 동구스타킹 걔 꺼구나? 승민(버럭) 야! 동구(움찔) ... 왜? 승민(당황한) ... 단무지 좀 아껴 먹어. 새끼야. 혼자 다... 마지막 남은 단무지를 반 베어 무는 승민. 46. 과거. 순대국집. 낮. 가판에 큼지막한 돼지 머리가 웃고 있다. 낡고 오래됐지만 공력이 느껴지는 식당. 승민 어머니가 카운터에서 돈 세고 있다. 단골손님들 북적이는 점심시간. 식당 안이 분주하다. 문이 열리면서 승민이 들어온다. 어머니어서 오세요. (보고) 니가 가게에 웬일이야? 승민오늘 열쇠를 안 가지고 나가서... 어머니칠칠맞게. (열쇠 주는) 곧장 들어가 있어. 47. 과거. 순대국집 앞. 낮. 문을 닫고 나오는 승민. 조금 걸어가는데... 서연>어. 승민아! 돌아보면 뒤에서 서연이 손 흔들며 다가온다. 48. 과거. 동네. 낮. 둘이 나란히 걷고 있다. 승민 손에 검정 비닐봉투. 서연아니 근데 무슨 남자애가 순대국도 못 먹어? 승민... 아니... 냄새가... 좀... 서연하튼. 서울 촌놈. 49. 과거. 빈 집. 낮. 서연짠~ 빈 집이 말끔해졌다. 쓰레기 하나 없는 마당. 마루는 반질반질. 서연내가 주말에 와서 다 치웠어. 쓸고 걸레질 다하고. 이제 여기 내 집이야. 승민이 신기한 듯 둘러본다. 보면... 마당 한 켠에 꽃밭처럼 일궈 놓은. 서연여기다 꽃을 심었거든. 승민가을에도 꽃을 심어? 무슨 꽃인데? 서연궁금하지? 안가르쳐줘. (웃는) 화면 바뀌면, 승민과 서연이 마루에 앉아 떡볶이와 오뎅을 먹고 있다. 승민참... 얼마 전에... 재욱이형 작업실 갔었는데... 서연근데? 승민강남 오피스텔인데 되게 좋더라. 컴퓨터도 있고. (조심스레) 넌... 안 가봤어? 서연얘기만 들었어. 좋다구. 안도하는 승민. 다시 슬쩍. 승민... 재욱이형이 그러던데... 너 써클에서 인기 많다며? 서연(웃는) 당연하지. 승민(태연한 척) ... 그러면... 남자 친구... 있겠네? 서연없어. 그딴 거. 승민(놀리듯) 그동안 뭐했냐? 남자 친구두 없구? 서연넌 뭐 있어? 승민나야 뭐... (흐리는) 서연지두 없으면서 무슨... 인기야, 재욱이오빠가 폭발이지. 우리 써클에서 재욱이오빠 안 좋아하는 여자애들 없어. (푸념하듯) 문득. 서연을 바라보는 승민. 승민그럼... 너도? 서연... (멈칫) 승민...... 너도 재욱이형... 좋아해? 서연... 승민... 혹시... 그래서 개론 수업... 듣는... 서연(버럭) 몰라! 승민이 깜짝 놀라 당황한다. 서연(돌아보는) 너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돼! 너만 알고 있어. 알았지? 알았지? 승민(굳은 표정. 끄덕끄덕) 어색한 듯 서연. 부끄럽게 배시시 웃다가. 서연재욱이 오빠. 나한테 관심도 없고... 그냥 나 혼자 삽질하는 거지. 뭐. 승민(부정하는) 재욱이형. 뭐가 그렇게 좋은데? 서연(손가락으로 센다) 잘 생겼지. 키 크지. 집도 부자지. 승민... 서연게다가 건축과잖아. 내가 옛날부터 건축하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있거든. 헤 웃는 서연. 그런 서연을 보다가 승민이 조심스레. 승민... 나두 건축관데. 서연(보다가) ... 그렇지. 승민... 그냥 그렇다고. (긁적) 50. 과거. 승민집 앞. 밤. 승민이 풀 죽어 터벅터벅 걸어온다. 대문 앞. 쭈그리고 있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난다. 어머니너 어떻게 된 거야! 승민(아차) ... ! 어머니한 시간두 넘게 기다렸잖아! 승민그냥 열쇠 집 불러서 열지. 어머니그런데 쓸 돈이 어딨어? 돈이 남아돌아? 승민알았어. 그만 해. 어머니오늘도 2만원 밖에 못 팔고 들어와서 속상해 죽겠는데! 51. 과거. 포장마차. 밤. 승민의 소주잔을 납뜩이가 채워준다. 승민이 원샷. 납뜩이이 새끼가 대학가서 술만 배웠나? 승민니 여자 친군 잘 있냐? 납뜩이아... 싱숭이? 잘 있지. 승민싱숭이? 그게 이름이야? 납뜩이독서실에 예쁜애가 둘 있는데... 보고 있으면 싱숭생숭 해진다고 해서 싱숭이, 생숭이. 아! 그래. 너 생숭이랑 소개팅 할래? 승민됐어. 무슨 고삐리를... 납뜩이생숭인 중3인데... (꼼장어 한 점 먹는) 승민이 또 한잔을 원샷한다. 승민야... 저기... 내가 아는 애가 있는데... 납뜩이여자? 승민아니... 남자. 근데 걔가... 어떤 여자애랑... 어떻게어떻게 하다가... 납뜩이잤어? 승민아니... 친해졌어. 납뜩이... 승민근데... 걔네 둘이... 진짜루 금방 친해졌거든? 숙제도 같이하고... 자기 집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근데... 납뜩이근데? 승민그럼... 그 여자애는 그 남자애랑... 왜 친해진 걸까? 납뜩이그게 뭔 소리야? 승민그러니까... 어떤 여자애랑 남자애가 있는데... 전혀 모르는 사이였거든? 근데... 납뜩이근데 그게 너지? 승민아니야! 그냥 내가 아는 앤데. 우리 과에... 납뜩이좆까 병신새끼야. 좀 그럴싸하게 야부릴 치던가. 누구야? 그 여자애? 화면 바뀌면, 테이블엔 빈 소주병이 여럿 뒹군다. 납뜩이걔 임자두 있다며? 승민걔 혼자 짝사랑하는 거라니깐! 납뜩이니 선배라며? 강남 살고 차도 있고. 승민... 납뜩이그냥 잊어. 새끼야. 원래 첫사랑은 잘 안되라고 있는 거야. 잘되면 그게 첫사랑이냐? 마지막 사랑이지. 나 봐. 중 3때 깜찍이. 걔 기억나지? 아유. 그 쌍년. 지금 생각해두... 승민... 납뜩이야! 쫌만 기다려. 내년에 내가 대학가서 넌 확실히 책임질께. 어떤 스타일? 이효리? 성유리? 아. 맞다! 너 이진 좋아하지? 승민... 근데 나... 여기서 그냥 포기하면... 납뜩이... 승민평생 후회할 거 같아. 승민의 얼굴이 한없이 절실하다. 52. 과거. 동네. 밤. 담벼락에 쪼그려 앉아 있는 승민 앞에 납뜩이가 담배를 한 대 물고 서있다. 납뜩이윤서연. 윤서연... (생각하는) 이름 괜찮네. 획수도 괜찮고. 승민... 납뜩이일단 소주 한 병을 사. 그리고 걔네 집 앞에 가는 거야. 가서 소주를 병나발로 딱! 불고... 전화를 해. 받잖아? 그럼 딱! 집 앞이다. 잠깐 나와. 그러고 딱! 끊어. 그냥. 승민그냥 끊어? 납뜩이그냥 끊어. 그럼 사람이 궁금하게 돼있어. 갑자기 왜? 이러면서 나오게 돼있어. 근데 너한테 술 냄새 팍! 날 꺼 아니야. 그럼 일단 쫀다고. 납뜩이 안되잖아? 갑자기 와서 술 냄새. 뭐지 이거. 낯선데? 그때! 딱! 다가가. 승민딱! 다가가? 납뜩이딱! 다가가. 그럼 걔가 첨엔 무서우니까... 뒤로 슬슬 물러난다고. 그러다 벽에 딱! 부딪히잖아? 그러면 오른손으로 니가 벽을 딱! 짚어. 그러면 걔가 완전히 쫄아서 ‘왜에... 그래에...’ 그런다고. 그때 딱! 기습적으로! 승민이 숨 죽인다. 납뜩이아무 말도 않고 그냥 가. 승민... 납뜩이터프하게. 절대 뒤 돌아보면 안돼. 뒷모습이 컨셉이야. 남자의 뒷모습. 왠지 쓸쓸해 보이는 그런... 응? 승민... 아무 말도 하지마? 그냥 그게 끝이야? 납뜩이왜? 너무 함축적이야? 오케이. 그럼... 딱 한마디만 해. 승민뭐라고? 납뜩이널 갖고 싶어! 딱! 그래. 승민... 납뜩이아니면 더 세게. 도발적으로! 내 아이를 낳아줘! 딱! 그래. 납뜩이를 보고 있던 승민의 볼이 발그레해진다. 승민(부끄런) 내가 지금 어떻게 애를 키워? 납뜩이이 븅신... 누가 진짜 나래? 말을 그렇게 하라는 거지. 승민이 생각에 잠겼다가... 덥석. 납뜩이를 끌어안는다. 승민고맙다. 납뜩아. 너밖에 없다. 납뜩이(토닥토닥) 이 새끼. 여자도 좋아할 줄 알고. 이제 남자 다 됐네. 다 컸어. 승민서연이. 걔 열라 귀엽거든! 졸라 귀엽거든! (외친다) 서연아!!!! 납뜩이조용히 해 새끼야! 쪽 팔리게. 승민이 목이 터져라 서연아~ 를 외친다. 행복해 보인다. 53. 오래된 집. 1층. 낮. 승민과 서연이 나란히 서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공사가 꽤 진행된 현장. 골조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승민이게 4미터. 어때? 서연근데 거실이 왜 이렇게 작아 보이지? 안그래? 화면 바뀌면, 오래된 집 안방에 둘. 원래 창이 있던 자리를 넓게 뚫어 놓은. 승민이천백에 천오백. 시스템으로 달릴 거고. 서연... 음... 승민아버지가 여기 앉아 계시면 마당이 한눈에 들어올 거야. 감나무도 잘 보이고. 서연창 크기를 더 높이면 어떨까? 천정 끝까지 다. 화면 바뀌면, 강한 햇살에 서연의 눈이 부시다. 눈살을 찌푸리면서 거실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서연. 거실 끝. 창이 들어설 자리에 서 있는 승민. 승민더 내려 봐. 더. 서연이 손을 높게 들어 조금씩 아래로 내린다. 승민더. 더. 거기. 그쯤이 될 거야. 서연의 손이 멈춘 곳. 얼굴을 내리쬐던 햇살이 가려진다. 승민밝은 것도 좋지만 종일 직광이 들어오면 그것도 불편하다고. 창 높이가 이쯤에서 끝날 꺼고 그러면... 계절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서연... 승민아침엔 해가 저기서 시작해서 지금 1시엔 여기쯤. 그리고 해질 때쯤 저쪽으로. 니가 있는 곳에 소파가 놓일 거니까 한 낮에 직사광선은 거기까지... 강한 햇살에 승민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어른거린다. 서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애써 승민을 바라본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가열차게 설명하는 승민이 우스웠는지... 빙긋 웃는다. 54. 오래된 집. 마당. 낮. 마당으로 나온 둘. 서연근데 궁금한 게 있어. 승민... ? 서연지금 방 하나 더 만들 순 없는 거야? 승민... (끄응) 응. 없어. 서연아무리 생각해도 방 2개는... 지금 어떻게 안될까? 승민아. 더워. (땀 닦는) 서연창문도 생각보다 너무 작아 보이고. 안방도 생각보다 작은 거 같고... 도면으로 보다가 직접 보니까... 너무 다른데. 아무리 생각해도... 승민그 아무리 생각... 그걸 하지마. 더운데 굳이 왜 그래. 힘들게. 서연그래두 아무리 생각해도... 승민아 진짜 덥다. 오늘 이상하게 덥네. 그지? 왜 더울까? 55. 초등학교. 낮. 그늘진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수박바를 하나씩 입에 물고 있는 승민과 서연. 서연6학년때 3반. 5학년때 8반. 4학년때 1반. 3학년때... 아... 몇 반이었지? 단출한 지방 초등학교.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줄줄이 서 있는 운동장 주변으로 간간히 뛰어노는 아이들 몇 명. 서연지금 보니까 운동장 참... 작다. 승민오늘따라 뭐든지 다 작아 보이는구나. 너 요즘 키 크니? 서연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승민너 키 크는 거 맞구나? 오늘따라 궁금한 것도 많구. 서연아 진짜! 한마디를 안져! 한마디를! 어쩜 그렇게 필사적으로 구박일까? 혼 난 승민. 잠시 조용. 승민... 알았어. 뭔데? 뭐가 또 궁금한데? 서연그... 썅년이 나야? 승민... ? 서연너 첫사랑. 그 썅년이 나냐고? 서연이 빤히 쳐다본다. 승민이 잠시 멍해하다가. 승민... 아니야. 너 아니야. 너랑 나랑 뭐가 있었다구? 얘는. 서연그렇지? 나 아니지? 승민... 서연(혼잣말) 그게 왜 나 같지? 그 썅년이. 이상하네... 승민그게 왜 너같애? 어처구니가 없네. 하튼... 진짜 웃긴 애야. 서연아니면 됐어. 그럼 됐지. 뭐. 한 숨 돌리는 승민. 평정심을 찾아가는데... 서연그럼. 그 쌍년은 왜 썅년이었어? 승민(바로) 그게 왜? 왜? 그게 왜 궁금한데? 서연그거 나 맞지? 승민아니라니깐! 아니라구! 아니야! 서연... 승민그게 아니라... 그게 왜 썅년이었나면... 실은 썅년이 아니라 쌍년이야. 쌍년. 내가 첫사랑을 양다리로 시작했거든. 여자 둘. 그래서 쌍. 년. 56. 인테리어 매장. 낮. 인테리어 매장 여기저기. 둘의 모습이 짧게짧게. 벽지를 고르고 있는 승민과 서연. 서연이거 어때? 승민(고개 가로젓는) 서연그럼 이건? 승민(고개 가로젓는) 서연(버럭) 그럼 도대체 뭐? 타일을 고르는 둘. 서연이 핑크색 타일을 골라잡고. 서연이거. 이거로 화장실은 전부 다. 쫙. 승민... 핑크로? 서연... 왜? 승민전부 핑크로? 서연(주춤) 좀... 그런가? 승민핑크로. 쫙? 진짜? 막? 핑큰데? 진열돼 있는 변기에 앉아 있는 서연. 변기마다 옮겨 다니면서 일일이 앉아본다. 왠지 민망한데... 서연좀... 작은가? 아닌가? 승민왜 여기서 똥을 싸고 그래. 사이즈 다 똑같애. 서연그립감이란 게 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장 복도를 걷는 둘. 서연너 그랬어. 승민안 그랬어. 서연그때. 분명히 그랬어. 승민그런 적 없다니깐. 서연니가 분명히. 첫 눈 올 때 만나자고 그랬어. 승민말도 안돼. 내가 그런 유치한 얘길 했을 리가 없어. 서연아. 짜증나. 녹음을 해 놨어야 되는데. 진짜. 털썩. 소파에 앉는 서연. 승민소파. 집에 있잖아? 서연이번에 바꾸려구. 너무 작어. 이리와 봐. 승민... 왜? 서연와 봐. 좀. 승민 손을 잡아끌어 옆에 앉히는. 서연앉아 봐야 제대로 알지. 어때? (보는) 어울리는 거 같애? 승민... 뭐가? 서연소파. 57. 옥상. 나란히 서 있는 승민과 은채. 무거운 공기. 서로 말이 없다가... 은채(푹 한숨) 알았어. 집문제는 그럼 오빠 말대로 해. 아빠한테 내가 잘 얘기할께. 승민... 미안해. 근데 너 잘 알잖아. 그게... 은채(끊는) 알았어. 알았는데... 나 좀 섭섭해. 은채 뒤돌아 내려가려다가. 멈칫. 승민을 보면서. 은채어차피 이제 다 식군데 그렇게 자존심 세워야겠어? 잠시 승민을 원망스럽게 보다가... 이내 내려가는 은채. 혼자 남은 승민.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확. 신경질적으로 팽개치는. 58. 어딘가. 낮. 화면 가득. 벽걸이 티브이. 그 안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홍보하는 듯한. 그저그런 홍보영상. 소리>윤서연님. 서연이 창구 앞에 선다. 창구직원에게 서류를 제출하는. 서연이제 다 끝난 건가요? 직원네. 3개월 내에 구청에 접수하시면 됩니다. 59. 오래된 집. 낮. 골조 공사가 거의 끝난 오래된 집. 인테리어 공사만 남겨놓은 상태다. 서연이 혼자 둘러본다. 일하는 인부들을 피해가며 여기저기. 거실을 지나 화장실도 보고. 넓어진 안방을 둘러보는 서연. 서연이 새로 뚫린 안방 창을 통해 마당을 바라본다. 캔버스 화폭마냥 맑은 하늘 아래 감나무가 가운데 보이고. 탕탕. 못질소리 간간히 작게 들리는 한가로운 오후. 무심히 풍경을 보던 서연의 빰에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황급히 훔쳐내는. 그래도 다시 흐르는. 60. 오래된 집. 낮. 승민(짜증내는) 아니라니깐. 그건 은채 혼자 생각이고. (한숨 쉬는) 그런 게 있어. 엄만 몰라도 돼. 예. 공사가 한창인 현장. 한 켠에서 전화하고 있는 승민. 승민시장 사람들 다 하는데. 엄마만 혼자 어쩌자구. (잠시) 공사 들어가면 어차피 장사는 못하는 거잖아. 몰라. 엄마 맘대로 해. 서연이 승민 뒤에서 불쑥. 전화를 엿듣는다. 승민(놀라서) 하튼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이따가. 승민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서연이 뒤에서 고개 내밀며. 서연못됐다. 엄마한테 하는 거 봐라. 이거. 승민(돌아보는) ... 서연근데 무슨 공사? 승민(한숨 쉬는) 엄마 가게 있는 시장이 재개발 들어가는데... 하튼 뭐가 복잡해. 서연어머니 시장에서 가게 하셔? 승민... (끄덕) 서연그랬구나. 몰랐네. 승민... 서연기분도 그런데. 우리 술 마실까? 술먹자. 술. 승민됐어. 무슨 술이야. 서연(얘교) 오늘 나랑 놀자. 승민얘가 왜 이래? 안돼. 나 이따가 학교 들려야 돼. 서연학교? 승민성적증명 떼러. 서연... 미국 가는 거 땜에? 승민귀찮게... 뭘 보내라는 게 많아. 에이... 61. 학교. 낮. 성적증명을 떼서 나오는 승민. 서연이 옆에서 엿보려고 기웃기웃. 서연좀 봐봐. 공부 얼마나 잘했나 보게. 승민(감추는) 됐어. 무슨. 둘이 교정을 걷는다. 서연학교 많이 변했다. 새로 생긴 건물들도 많고. 승민... 서연근데 왜 우리 한번도 학교에서 못봤지? 오다가다 만났을 법도 한데. 승민나 1학년 마치고 군대 갔었어. 서연아...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학생회관 근처. 스피커에서 교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학생 디제이 멘트에 이어지는 음악. 승민방송반 사람들은 가끔 봐? 서연(픽- 웃는) 전혀. 방송반. 1학년 때까지만 하고 관뒀어. 연락이고 뭐고 없어. 승민... 재욱이형두? 피식. 씁쓸하게 웃는 서연. 고개를 젓는다. 서연미국은 갔다 언제와? 승민모르지 뭐. 몇 년이 될지... 가봐야 알지. 서연섭섭하겠다. 그 동네에서 오래 살았잖아. 승민섭섭하긴. 지긋지긋하지. 서연그럼 느네 어머니는 거기 혼자 계시는 거야? 승민... (끄덕이는) 서연가게도 정리하신다며? 승민몰라. 어떻게 될지. 서연그래두. 걱정되겠다. 혼자 아프시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승민... 서연나이 드신 분들은 순간이더라. 니가 신경 많이 써. 멈춰 서는 승민, 정색하고, 낮게. 승민그럼 나보러 어쩌라고? 서연... ? 승민그냥 여기서 평생 엄마랑 같이 살까? 서연난 그냥... 걱정 돼서... 승민니가 그런 걱정을 왜 해? 승민이 뾰족한 말투로. 툭툭 뱉는다. 서연왜 화를 내? 그냥 자주 왔다 갔다 하면 되잖아. 적적하지 않으시게... 승민자주 왔다 갔다 하기는... 내가 어디 놀러가는 걸로 보이니? 당장 학비에, 집세에. 먹고 살 걱정으로도 빠듯해. 모르면 속 편한 소리 말어. 서연(보다가) ... 그래. 알았어. 그만 하자. 내가 잘못했어. 그만해. 그리곤 말없이 그저 걷기만 하는 둘. 어색한 공기. 62. 편의점. 밤. 늦은 밤. 깔깔대며 컵라면 후후 거리고 있는 여고생들. 서연, 한쪽 구석에서 진열대 잡지들을 툭툭 펼쳐보고 있는데... 잠시 후. 두리번거리며 들어오는 승민. 63. 횟집. 밤. 회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소주잔을 비우는 승민과 서연. 승민(잔을 채워주며) 왜 하루종일 술타령이야? 뭔 일 있어? 서연(버럭) 꼭 뭔 일 있어야 술 먹어? 승민(급얌전) 아니지. 그냥 먹어도 돼지. 그래서 술이지... 암요. 자. 마셔. 승민이 잔을 들면 건배하는 서연. 둘 다 단숨에 비운다. 승민아깐... 미안했어. 서연(픽 웃는) 승민화 났어? 서연뭘 화가 나. 너 찌질한 거 내가 모르니? 역시 픽 웃는 승민. 종업원>매운탕 나왔습니다. 지금 드셔도 돼요. 종업원, 냄비를 놓고 간다. 서연, 앞에 놓인 매운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서연매운탕... 이름 이상하지 않냐? 승민... ? 서연알이 들어가면 알탕이고... 갈비가 들어가면 갈비탕인데... 이건 그냥... 매운... 탕. 탕인데... 맵다! 그냥 그거잖아. 그게 끝이잖아. 뭐가 들어가든... 다 그냥 매운... 탕. 마음에 안들어. 승민(보는) ... 개그야? 서연나 사는 게 매운탕 같아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잘 모르겠어. 그냥 맵기만 해. 승민(눈치보는) 지리로 시킬 걸 그랬나? 서연나 오늘 이혼했다. 승민... ! 서연오늘 법원가서 서류 정리하고 왔어. 이제... 법적으로 싱글. 승민... (그저 묵묵히) 서연근데 반응이 왜 이따위야. 깜짝 놀라거나. 좀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승민대강... 알고 있었어. 서연... ! 승민설계 하면서 남편 얘기 한번도 안하길래... 보통은 안 그러거든. 그래서 적어도 혼자 사나보다. 그 정도 생각은 했어. 서연오... 집 설계 맡기면 그런 것도 뽀록 나는구나. 피식 웃는 둘. 승민얼마나 된 거야? 그런지. 서연한... 3년? 결혼하고 1년만에 갑자기 갑자기 이혼을 해달래네. 그 새끼가. 승민왜? 서연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그러더라고. 승민... 서연모르지 뭐. 내가 그렇게 싫던가. 아니면... 딴 여자가 생겼던가. 하긴. 마음 떠났는데 그 이유가 뭐가 중요해? (웃는) 승민... 서연별거 하면서 3년 버티다가... 오늘 들어줬지. 승민왜 버텨? 3년이나. 서연(빙긋) 그럼 난 뭐 먹고 사니? 승민... 서연버틸수록 한푼이라도 더 받는대. 이혼하면 대출도 잘 안되고. 승민... 서연버틴 덕에 집도 짓고. 세금까지 싹 다 잘 챙겼어. 뭐. 괜찮아. (웃는) 피식 웃는 서연. 승민도 같이 피식. 허탈하게 웃는다. 서연나 열라 치사하지? 진짜 쌍년이지? 승민... 서연근데 어쩔수 없어. 세상의 섭리야. (잔을 드는) 승민잘했어. 씨발. 졸라 축하해. (잔 부딪히는) 64. 횟집 앞. 밤. 승민아니야. 술 안마셔. (잠시) 응? 대학동창 잠깐 만나서. 아니... 너 모르는. (잠시) 응. 알았어. 장모님한테 한번 들리겠다고 전해줘. 응. 그래. 응. (끊는) 승민이 전화를 끊고 돌아보면 취한 서연이 비틀비틀 다가온다. 서연우리 한 잔 더하자.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 더. 승민사모님. 아니. 아가씨. 입가심은 양치질로 하시고요... 쿵. 서연이 철퍼덕... 땅바닥에 쓰러졌다. 승민(놀라서 다가가는) 괜찮아? 보면 무릎이 조금 까졌다. 피도 살짝 나는 상황. 서연이 멍- 하니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다가... 글썽... 눈물이 흐른다. 승민괜찮아. 괜찮아. 빨간 약 바르면 금방 나. 서연... 병신. 승민뭐? 서연... 개새끼. 승민... 나? 서연... 씨발... 승민... 서연(울면서 악쓰는) 다... 좆 같애! 악에 바쳐, 찢어질 듯. 욕을 뱉어 내는 서연, 주르륵... 마른 눈물이 흐른다. 승민이 우는 서연을 바라보다가... 지긋이 어깨를 안아주면... 승민 품에 얼굴을 묻고, 서연, 소리 죽인 채,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착잡한 표정으로 서연을 안고 있는 승민. 승민 품안에서 들썩이는 서연의 작은 어깨. 꼬옥 안아주는 승민. 서연>우리 10년 뒤에 뭐하고 있을까? 65. 과거. 철길. 낮. 해질녘. 먼 산 뒤로 붉게 노을이 진다. 감탄스럽게 먼 하늘을 바라보는 둘. 서연우리 10년 뒤에 뭐하고 있을까? 승민난 건축하고 넌 피아노치고 있겠지. 서연아니. 난... 피아노 안 칠 꺼야. 승민왜? 서연음악 하는 애들 재수 없어. 다들 지 잘났다고. 부모 돈지랄. 재수 없어. 승민그럼... 뭐 할 껀데? 서연아나운서! 그래서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질 꺼야. 승민아나운서가 돈 많이 벌어? 서연...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해. 화면 바뀌면. 양팔로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서연. 철길 위를 걷고 있다. 옆에서 승민도 양팔을 뻗고 철길 위를 나란히. 단풍이 절정인 가을. 균형을 잡으려는 승민. 하지만 서연보다 먼저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승민의 손목을 때려가며 깔깔대는 서연. 66. 과거. 카페. 낮. 야외 카페. 마당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둘. 서연저기 봐... 와... 해질녘. 먼 산 뒤로 붉게 노을이 진다. 감탄스럽게 먼 하늘을 바라보는 둘. 서연나 오늘 생일이다. 승민(깜짝) 오늘? 서연응. 승민근데... 왜. 나랑... 생일이면 친구들이랑 같이... 파티하고 그런거... 서연넌 내 친구아니야? 승민(배시시 웃는) 진작 얘기했으면 선물이라도 준비할걸. 서연해줘. (웃는) 승민뭐 해줄까? (웃는) 서연나중에 이런데다 집 짓고 살거야. 그때 니가 지어줘. 꽁짜로. 알았지? 승민당연하지! 서연이 계산서 뒷면에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서연난 어떤 집에서 살 꺼냐면... 일단 2층집. 창이 많고. 여기가 거실이랑 안방. (슥슥) 애들 방은... 애는 둘 정도 낳을 꺼니까... (슥슥) 67. 과거. 시외버스 안. 밤. 시외버스 뒷자리. 나란히 앉아 있는 둘. 서연이 고개를 승민 어깨에 기대고 잠이 들었다. 승민이 어깨각도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땀 삐질삐질. 으응... 서연이 작게 뒤척이면서 물컹. 가슴이 승민 팔에 밀착된다. 눈이 똥그래지는 승민. 점점 몸이 꼬이면서 자세의 난이도가 상승하는데... 서연이 뒤척이면서 승민 쪽으로 바싹 기대온다. 이제... 고개만 돌리면 바로 입을 닿을 만한 위치. 서연은 눈 감은 채 무방비. 승민의 심장이 쿵!쾅!쿵!쾅! 습습- 후후- 승민이 눈을 질끈 감고. 두근두근두근... 입을 쭉 내밀고... 살짝 입을 맞춘다. 그러고는... 헉헉헉... 혼자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스르르 눈을 뜨는 서연. 놀라서 그대로 얼어붙은 승민. 서연이 승민을 게슴츠레 보면서... 서연... 나 오줌 마려... 68. 과거. 길가. 밤. 버스가 지나가는 국도변. 근처 풀숲으로 들어가는 서연. 서연>망 잘 봐. 승민이 뒤돌아서 사주경계를 펼치고 있다. 잠시후 쪼르르... 땅바닥을 흐르는 물줄기. 승민의 운동화 옆을 지나간다. 가을 밤. 찌르르. 풀벌레 울음소리 사이로 흠흠... 승민의 헛기침. 69. 과거. 독서실 앞. 밤. 납뜩이그게 키스냐? 키스란 건 말이야... 일단 입술이 딱! 붙어... 딱 붙잖아? 그러면... 혀가! 혀가... 스르르... 이렇게... 하다가.... (양손을 비비며) 이렇게이렇게... 그러다가... 그 다음엔 (빨리 비비며) 졸라 이렇게이렇게... (혼자 흥분) 헉헉... 알았어? 이런 게... 헉헉... 키스야. 니가 한건 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새끼야. 혼나듯 고개 숙이고 있던 승민이 순간 벌떡. 고개를 쳐들고. 승민(진지하게) 저번에 철길 걷기 내기를 했는데... 납뜩이그게 뭐야? 승민몰라? 철길 걷다가 먼저 떨어지는 사람이 지는 거. 납뜩이(경악하는) 오 갓. 너무 유치해. 승민걔가 내기로 손목 때리기를 하자는 거야. 납뜩이근데? 승민손목 때리기는... 보통 사이에선 하지 않지 않냐? 막 손잡고 그래야 하는데... 납뜩이그럼 뭘 해? 아구창을 날려? 70. 과거. 학생회관 앞. / 스튜디오. 낮. 학생 회관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승민. 바로 밑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 들리는 교내방송, 노래가 끝나고 디제이 멘트가 이어진다. 스피커>학우 여러분.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어느덧 가을도 얼마 남질 않았네요. 전 며칠 전 마당에 꽃을 심었습니다. 같이 있던 친구가 가을에도 꽃을 심느냐고 궁금해 하더군요. 무슨 꽃인지 물어봤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스튜디오 부스에 앉아있는 서연. 서연작은 설레임을 가지고 봄을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요. 마지막 곡은... 전람회가 부릅니다. 기억의 습작. 지금까지 진행에 윤서연 연출 한만수 책임 최재욱였습니다. 에이.비.에쓰. 노래가 흘러나온다. 승민... 감격에 겨운 표정이다. 화면 바뀌면, 우르르... 학생회관에서 나오는 서연. 승민이 서연을 향해 미친듯이 손을 흔든다. 서연도 승민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주는. 그 뒤로 같이 따라 나오는 키 큰 재욱의 모습. 71. 과거. 재욱의 차 안. 낮. 반짝반짝 흰색 소나타 투. 운전하는 재욱과 조수석에 서연. 서연...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재욱괜찮아. 선배가 후배 드라이브 시켜주는 셈 치지 뭐. (백미러 슬쩍) 저 새낀 자네. 뒷좌석에 혼자 앉아 자고 있는 승민. 서연오빠 오피스텔이 대치동이죠? 거기 얼마나 해요? 재욱왜? 너 이사 오게? 서연네. 승민(꿈틀. 감고 있는 눈썹이 움찔하는) 재욱언제? 서연최대한 빨리요. 아빠가 집 알아보라고 해서... 재욱오... 잘 됐네. 그럼 내 오피스텔로 한번 놀러와. 와서 보고... 술도 한잔 하고... 서연그래두 돼요? 재욱당연하지. 후배가 이사 온다는데. 방송반 압서방파 한 명 늘었네. 서연압서방... 그게 뭐에요? 재욱압구정동, 서초동, 방배동. 너두 이사 오면 신고해야지. 정릉 언덕 어귀. 재욱의 차. 신호대기에 걸려 서있는데... 승민(불쑥) 전 여기서 내릴께요. 빠른 동작으로, 문을 열고 내리는 승민. 승민안녕히 가세요. 잘 가. 하곤 휙~ 가버린다. 어리둥절한 서연. 재욱새끼. 인사하는 싸가지 하고는... 말없이, 사이드미러로 멀어지는 승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서연. 72. 과거. 승민집. 밤. 힘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승민. 어머니(계속 찾는) 내가 사리돈을 어디다 뒀더라? 아이고 골치야... 마루 선반 서랍을 뒤적뒤적. 약을 찾는 어머니. 승민이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승민(불쑥) 엄마 우리 이사 가면 안 돼? 어머니무슨 이살 가? 승민그냥 이사... 어머니그게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야? 승민강남에 아파트 같은 데로... 어머니가득이나 골치 아파 죽겠는데 얘가 웬 헛소리야. 나중에 니가 돈 벌어서 이사 가. 오늘두 겨우 2만원 팔고 들어왔어. 승민(버럭) 그래. 자랑이다! 꽥! 소리 지르는 승민. 획~ 나가버린다. 깜짝 놀란 어머니. 73. 과거. 승민집 마당. 밤. 승민이 꽝! 철제 대문을 힘껏 발로 차며 연다. 그대로 푹- 찌그러진 대문 모퉁이. 씩씩... 화를 삭히며 서 있는 승민 그 아래로 펼쳐지는 정릉의 야경. 74. 과거. 독서실 앞. 밤. 벌떡 일어서는 납뜩이. 납뜩이이제 진짜 없다.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승민(고개 드는) ... 납뜩이고백해. 승민... 뭐라고? 납뜩이뭐라고 그러냐면... (고민하다가) 첫눈 올 때 만나자고 그래. 승민그게 고백이야?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생각 할 수도 있잖아. 납뜩이그걸 아무 의미 없이 생각하는 여자면. 그건 여자가 아니라 곰이야. 곰! 우루사! 그런 짐승보다 못한 년은 차라리 안 사귀는 게 나아. 승민(째려보는) ... 년이 뭐냐... 년이. 납뜩이됐다. 너한텐 무리다. 인수분해도 못하는 놈이 무슨 미적을 풀어. 푹. 고개 숙이는 승민. 승민그래. 됐다. 그만 할란다. 납뜩이뭘 한게 있어야 그만 하지. 승민난 그냥... 서연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그럼 돼. 납뜩이행복? 해피니스? 좆까라마이신이다! 병신 새끼. 승민... 납뜩이해피니스. 거기 p가 두갠가? (땅에 써보는) 아. 난 스펠링이 너무 약해. 문제야. 승민, 다시 고개를 들고. 승민이제 다 끝났어. 다신 안봐. 끝! 75. 과거. 서연집. 낮. 커다란 짐을 이고 현관으로 들어오는 승민. 서연무겁지? 승민헉헉... 아니야... 나... 헉헉... 무거운 거 드는 거 좋아해... 헉헉... 화면 바뀌면, 5층짜리 연립주택. 새로 이사 온 서연의 집. 아직 정리가 덜 된. 박스들이 널려있는 틈에. 둘, 나란히 앉아 앨범을 보고 있다. 서연이건 국민학교 졸업식 때. 그땐 키가 작았어. 어릴적 서연의 사진들. 쑥스러워하는 서연과 하나하나 꼼꼼히 눈에 새기는 승민. 승민여긴... 어디야? 서연춘천 아빠집. (손으로 가리키는) 우리 아빠. (웃는) 빛 바랜 사진엔 오래된 집 마당에서 어린 서연을 안고 있는... 젊은 서연 아버지. 76. 과거. 버스정류장. 낮.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둘. 왕복 8차선 위에 빽빽한 차들, 많은 사람들. 서연자... 이거. 서연이 불쑥 승민에게 포장된 선물을 건넨다. 서연선물. 승민(쑥스런) 됐어. 무슨 선물이야. 서연받어. 고마워서 그래. 오늘 짐도 옮겨주고... 맨날 나한테... 하튼... 받어. (웃는) 얼떨결에 받는 승민. 잠시 말없이 고민고민 하다가... 고개 숙이고 긁적대며. 승민저기... 첫 눈 올 때... 뭐 해? 서연첫 눈? 그거 언제 오는데? 승민(당황한) 아... 그러니까... 글쎄... 보통 겨울에... 때 되면... 서연우리 그때 만날까? 승민... ! 서연재밌겠다. 첫 눈 오면 무조건 늬네 동네. 그 빈 집에서 보기로. 어때? 승민어... 뭐... 그럴까. 그럼? 덥석 손 잡는 서연. 그리고 손을 안떼는. 긴장한 승민. 버스가 오면서 손을 푼다. 버스안에서 손을 바라보며 웃는다. 77. 과거. 버스 안. 낮. 손에 들여 있는 서연의 선물. 포장을 풀어보면... 전람회 씨디. 씩- 웃는 승민. 78. 과거. 독서실 앞. 낮. 담벼락에 몸을 떼굴떼굴 굴리고 있는 승민. 너무 기쁜 나머지 터져 나오는 환희의 몸짓. 납뜩이거봐. 내 말대로 하니까 되잖아. 승민(너무 좋아 부르르 떠는) ... 납뜩이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이제 최종 마무리. 오답 체크. 일단 이벤트가 필요해. 첫눈이 왔다. 그러면... 승민(끊는) 됐어. 보면 순 엉터리.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꺼야. 납뜩이야... 이런거야? 배은망덕한 놈. 결초보은이 이런 건가? 그래서 어쩔 건데? 승민 생각하다가 좋아서 또 혼자 실실 웃는. 79. 과거. 승민집. 밤.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뭔가 만드는 승민의 뒷모습. 보면... 강촌 술집에서 계산서 뒤에 그렸던 서연의 낙서. 그걸 열심히 보면서 정성스레 주택 모델을 만들고 있다. 1/100 스케일로 작게 만들어진 서연이 살고 싶어 했던 2층집. 전람회 씨디가 턴테이블 위에 판 대신 놓여있다. 기분 좋아 들뜬 승민이 슥- 턴테이블을 돌리면... 씨디가 반짝거리면서 빙그르 돌아간다. 80. 방송국. 낮. 방송국 로비 한켠. 종이컵 커피를 들고 서 있는 서연과 백피디. 백피디선배. 좋은 기회잖아요? 서연... 글쎄. 백피디아니. 반응이 왜 이래? 난 무지 칭찬 받을 줄 알았는데. 고맙다고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한우 사달라고 그러려구 그랬는데. 서연(웃는) 고마워. 고맙긴 고마운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백피디MC하고 싶어 했잖아? 선배도 이제 현장 그만하고 메인 해야지. 언제까지... 같이 해요. 선배가 MC하고. 내가 PD하고. 아름답잖아? 서연... (그저 웃는) 81. 병실. 밤. 핸드폰 안에 보이는 오래된 집 공사 사진. 서연이 한 장씩 넘기며 자랑하듯 아버지에게 보여준다. 서연아빠. 이거 봐봐. 집. 너무 예쁘지? 느릿한 동작으로 밥숟갈을 뜨면서 사진을 보는 아버지. 빙긋 웃는다. 서연이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보면... 간이 식탁위로 떨어져 있는... 먹다 흘린 반찬들, 밥알들. 조그만 밥알들이 모래처럼 흩뿌려져있다. 서연아빠. 나랑 같이 살래? 82. 오래된 집. 낮.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향하는 승민. 마당으로 들어가려는데... 멈칫. 보면 공사 중인 담장 곁에서 목장갑을 끼고 낑낑. 미장 벽돌을 나르고 있는 서연. 승민(다가가) 너 뭐하니? 목장갑 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서연. 환하게 웃으며. 서연(웃는) 따까리. 83. 동네 시장. 낮. 뽕짝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지방 동네 번화가. 그 근처를 승민과 서연이 천천히 걷고 있다. 시장 초입에 엔젤 피아노 학원. 조그만 지방 피아노학원이다. 서연여긴 정말... 하나도 안변했네. 승민밥 먹자. 내가 살께. 서연여기서 체르니 처음 시작했는데. (웃는) 승민뭐 먹을래? 서연선생님 진짜 무서웠거든. 맨날 손바닥 맞고. 승민먹고 싶은 거 없어? 서연(버럭) 아니. 왜 하루종일 밥타령이야? 요즘 굶고 다녀? 멀뚱이 서연을 보는 승민. 툭. 승민너 미역국이나 챙겨주게. 서연... (보는) 승민너 오늘 생일 아니야? 서연이 승민을 보다 킥킥... 웃음이 이어진다. 승민아니야? 생일 바꿨어? 서연맞어. 오늘 내 생일 맞어. (웃는) 승민근데 왜? 서연... 기특해서. 귀여워서. (또 웃는) 84. 막국수집. 낮. 둘이 마주 앉아 우걱우걱. 막국수를 먹고 있다. 서연근데 선물은 없어? 승민역시 막국수는 춘천 막국수라고. 서연국수 한 끼로 퉁치게? 승민막국수는 이름 이상하지 않어? 서연나 받고 싶은 거 있는데. 승민막국수. 얘는 그냥 막. 막... 국순 거야. (혼자 킥킥) 서연얘기 해도 돼? 승민(버럭) 또 뭐. 뭐? 서연피아노. 승민... 뭐? 서연피아노 얼마 안해. 승민... 얼만... 데? 서연한 2천? 승민야! 서연(웃는) 좀 비싸? 그럼 피아노는 됐고. 대신... 승민... 서연피아노 놓을 곳이 필요해. 제대로 된 방으로. 승민... ! 서연... 그러니까... 2층을 올려줘. 웃음이 사라진 단호한 표정의 서연. 서연고민 많이 했는데... 승민... 서연나 다 정리하고... 완전히 내려와 살려고. 승민... 서연이 집이 좋아졌어. 여기 살면서 인생 리셋할까 하고. 새출발. 멋지지? (웃는) 승민도 굳은 표정으로 서연을 가만히 보다가... 승민진심이야? 서연응. 승민이미 공사 한 거 뜯어내야 돼. 서연응. 승민돈도 많이 더 들 거야. 서연응. 승민... (보는) 서연응. 85. 설계사무소. 낮. 은채(버럭) 그게 말이 돼? 지금! 은채가 잔뜩 화가 났다. 그 앞에 승민과 구소장. 은채다음주 준공검사 앞두고, 이제와서 무슨 2층을 올려? 장난쳐? 승민추가 비용 다 감수하겠대. 은채돈이면 다야? 설계 다시 하고 골조 건들면 최소한 한달인데. 그럼 스케쥴은? 승민좀 늦춰지겠지. 은채다음달에 우리 결혼식인 거 까먹었어? 지금 할일이 산더민데. 우린 어쩌라고? 승민얘기했잖아. 서연이가 완전히 내려와서... 은채(버럭) 그건 그 여자 사정이지! 은채 고함에 잠시 조용. 다들 말이 없다가... 구소장야. 됐어, 됐구. 나한테 넘겨. 넌 이제 손 떼고 결혼 준비나 해. 쨔샤. 승민(끊는) 내가 할께. 은채뭐? 승민내가 마무리하게 해줘. 구소장... 승민시간 맞출께. 할 수 있어. 은채... 승민내가 시작한 거니까, 내가 끝낼께. 86. 오래된 집. 낮. 대충 가안을 잡은 모델과 도면이 보인다. 1층 지붕 위로 직사각형 매스가 올라서 있는 모습. 승민골조를 손대면 기초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 그건 너무 일이 커지고. 피아노방은 그냥 1층 방을 쓰자. 방음재 대고. 서연그럼 내 방은? 나 짐 다 싸서 내려 올건데. 승민니 방은 새로 2층에. 승민이 모델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승민원래 집이 조적이니까, 그 위에 매스 하나를 얹히고. 거실로 켄틸레버 천오백 더 나오는 식으로. 구조를 풀고. 서연... (보는) 승민새로 2층에 6평 방이랑 욕실, 드레스룸. 덤으로 1층 지붕이 2층의 마당으로. 서연... (보는) 승민거실 뒷벽을 따라 계단이 일자로 쭉 가고, 그 밑부분을 주방 수납공간으로. 그러면 거실면적 손해도 거의 없고, 추가비용도 최소화 할 수 있을 거 같애. 가만히 모델을 바라보던 서연. 빙긋 웃는다. 87. 오래된 집. 여러때. 늦은밤. 현장 한 구석. 목수 작업대 앞에서 노트북으로 도면을 그리고 있는 승민. 도면을 들고 인부들에게 일일히 설명하는 승민. 이른 새벽. 지저분한 소파 위에서 쪽잠을 자는 승민. 마당 수도꼭지에서 세수하고 양치하는 승민. 양손에 잔뜩 야식을 들고 온 서연. 승민과 현장 인부들과 일일히 대접한다. 늦은밤. 알전구 조명을 켜놓고, 배관 설비 작업하는 인부들. 석고보드에 연필로 직접 도면을 그려가며 인부들에게 설명하는 승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직접 자재를 나르는 승민. 서연도 목장갑 끼고 옆에서 도우며 환하게 웃는다. 쾅. 쾅. 쾅. 망치소리와 함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2층 계단. 88. 오래된 집. 낮. 거실 벽을 따라, 아직은 마감도 안된 거친 형태뿐이지만... 계단이 놓여졌다. 그 앞에 서연이 위를 바라보다가... 한단. 한단. 밟고 올라간다. 계단 끝에 이르면, 이제 막 기둥을 세우고 형태를 만들고 있는 2층. 방 윤곽이 어느 정도 섰고, 욕실부분 방수공사가 한창이다. 서연와... 보면... 1층 옥상. 새롭게 만들어진 2층의 마당에 막 파릇한 잔디가 깔려있다. 높은 가을 하늘아래, 떠 있는 듯한 조그만 마당이다. 서연이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딛어 본다. 기분 좋은 듯. 성큼성큼. 장난치듯 잔디를 밟다가. 보면... 구석 한켠에 피곤에 쩌든 모습으로 널 부러져 있는 승민. 서연이 다가가 승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 모르고 쿨쿨 자고 있는 승민. 그러더니... 그 옆에 나란히 모로 누워... 승민의 얼굴을 빤히 훔쳐본다. 손을 뻗어... 헝클어진 승민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화면 가득. 희미한 미소가 가득한... 서연의 얼굴. 강교수>한 학기 동안 건축학개론 듣느라고 수고했어. 89. 과거. 강의실. 낮. 화면 가득 서연의 얼굴. 뭔가 찾는 듯. 두리번.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틈으로 서연, 연신 두리번 두리번. 강교수오늘 종강인데, 간단하게 뒷풀이 자리를 만들었으니까... 시간 되는 학생들 잠깐 들려서 맥주 한 잔씩 하구 가. 90. 과거. 강의실 앞. 낮. 우르르 수업 끝나고 나오는 학생들 틈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서연. 서연너 어디야? 왜 수업 안 왔어? 이거 확인하자마자 연락해. 재욱>뭐 해? 보면 뒤에 재욱. 재욱같이 들렸다 가자. 끝나고 내가 데려다 줄께. 서연오빠. 승민이 못 봤어요? 재욱승민이? 몰라. 왜? 서연... 재욱뭐 해. 빨리 와. 서연의 옷자락을 끄는 재욱. 주저주저 끌려가는 서연. 91. 과거. 서연집 앞. 낮. 놀이터 그네에 앉아 승민, 소주 한 병을 꺼내 벌컥벌컥. 승민저기...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해? 약속 있어? 없어? 그러면 그날... 나랑 같이 놀래? 왜냐고? 왜냐면... 왜... (말 막힌) 혼잣말을 해가며 고백 연습을 하는 승민. 무릎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주택 모델. 서연의 낙서 그대로 만든. 승민난 더 이상 널... 친구로만 대하기엔... 너무나 마음이... 맘에 안든다. 머리를 쥐어뜯는 승민. 다시 골똘히 고민을 하다가... 결심한 듯. 승민널... 좋아해. 삑삑- 승민의 삐삐가 울린다. 확인 하지 않은 메시지 3개.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는 승민. 외투로 모델을 꼭 감싸면서 또 소주 한 모금. 92. 과거. 술집. 밤. 왁자지껄. 술판 벌어진 건축학개론 종강 파티. 재욱이 서연의 잔을 채워준다. 재욱자. 원샷. 서연(난처한) 오빠. 저 술 잘 못해요. 재욱그러니까 배워야지. 건배를 강요하는 재욱. 서연, 망설이다가... 한 잔 더 마시는. 93. 과거. 서연집 앞. 밤. 한참이 지난 듯. 조용한 텅 빈 거리. 승민이 남은 소주를 벌컥벌컥 비우고, 힐긋힐긋. 서연 집 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스르르... 나타나는 재욱의 소나타. 현관 앞에 선다.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는 승민. 유심히 보고 있는데... 재욱야. 좀 걸어봐. 비틀비틀. 술에 취해 몸을 잘 못 가누는 서연. 털석 화단에 쭈그리고 앉는다. 그 옆에 나란히 앉는 재욱. 서연의 어깨를 두르고 좀 보다가... 입을 맞추는. 곧 진한 키스로 이어진다. 서연의 가슴을 만지는 재욱. 취한 서연은 무방비.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승민. 재욱이 일어나 서연을 업는다. 재욱서연아. 들어가자. 3층 맞어? 301호? 서연을 업은 재욱이 현관 안으로 사라지면... 승민, 초점 잃은 얼굴로 현관 앞으로 터벅터벅. 올라다 보면... 잠시 후 불이 켜지는 서연의 집. 얼어붙은 듯, 불 켜진 창문을 올려다보는 승민. 94. 과거. 서연집 현관. 밤.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승민. 문에 귀를 대 본다. 승민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다. 승민이 가만히 닫힌 문을 보다가... 가져온 모델을 문 앞에 놓는다. 이내 뒤돌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승민. 95. 과거. 거리. 밤. 인적 드문 거리. 승민이 터벅터벅 걷고 있다.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저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승민. 옆에서... 빵빵! 빈 택시 한 대. 승민 옆 선다. 기사어디 가세요? 승민... 정릉이요. 기사아... 정릉은 안 되는데... 승민... 예? 기사거긴 안 되는데... 승민왜요? 기사다른 차 타요. 지금은 강 못 건너. 승민(떨리는 목소리) 왜 못 가는데요? 기사아니 못 간다면 그런 줄 알지... 빨리 문 닫아. 승민가요... 정릉... 기사아... 진짜... 이 사람이... 승민(버럭) 왜 못 가냐구! 기사아 새끼. 진짜 짜증나게... 야! 너 빨리 문 못 닫아? 승민(악 쓰는) 씨발... 못내려. 왜 못가? 왜! 기사씨발? 택시기사가 차에서 내려 승민을 떼어 내려는데... 차문을 꼭 잡고 놓지 않는 승민. 기사씨발? 어디서 어린 새끼가... 술 쳐 먹었으면 곱게 취할 것이지... 어쭈 이거 안 놔? 안 놔? 승민못 놔! 씨발!... 정릉 가! 기사이런 미친 새끼가... (힘껏 밀치는) 휘청.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승민. 순간 눈이 뒤집히는. 부들부들... 악 쓰면서 기사한테 달려드는 승민. 거칠게 이어지는 몸싸움. 96. 과거. 한남대교. 밤. 한남대교를 걷고 있는 승민. 몹시 추운 겨울 밤. 다리 위로 불어대는 칼바람. 97. 과거. 독서실 앞. 새벽.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승민과 납뜩이. 얻어터져 엉망이 된 승민의 얼굴. 납뜩이... 씨발. 개좆같은 년. 승민... 납뜩이야! 다 잊어... 뭐 여자가 걔 하나냐? 승민... 납뜩이관두라 그래. 그런 쌍년은 줘도 안 갖어. 승민... 납뜩이다 잊어버리고... 이 형님만 믿어. 내가 대학만 가면...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승민. 납뜩이 어깨에 기대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납뜩이새끼야... 힘 내... 승민의 어깨를 꼬옥 안아주는 납뜩이. 그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하는 승민. FO. 98. 오래된 집. 낮. 완성 직전의 집 안. 승민이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찍고 있다. 2층 서연방. 그리고 잔디가 깔려 있는 마당. 찰칵. 찰칵. 승민의 카메라에 담기는 기록. 계단을 내려와, 새로운 거실과 아일랜드 주방. 부실 한 곳은 없는지 여기저기, 사소한 구석까지도 꼼꼼히 살피면서 찰칵. 찰칵. 원래 외부였던 오래된 집 측벽이 지금은 내부로 들어와 거실 벽이 되어 있다. 어린 서연의 키를 재고 또 쟀던 오랜 흔적들이 주방 벽이 되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빙긋 웃던 승민이 낙서를 찰칵. 삑삑. 현관이 소리를 내면서 열린다. 서연이 커다란 박스를 들고 총총 들어오다가 승민을 보고는 반갑게 빙긋 웃는. 서연어. 있었네. 승민이사 시작 한 거야? 서연(웃는) 이사는 다음 주고... 그냥 몇 개 가벼운 거 챙겨 왔어. 화면 바뀌면. 승민과 서연이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이번엔 화장실. 벽타일이며 세면대를 닦는 둘. 그렇게 열심히 쓸고 닦는다. 유리창, 계단, 현관... 집 안 구석구석을 말없이 나란히... 정성껏 청소하는 둘. 99. 오래된 집. 밤. 1층 처마 밑 테라스. 드럼통 안에 불을 지피고 곁불 마냥 쬐고 있는 둘. 서연이제 남은 게 뭐야? 승민뭐 조경 마무리 하고. 담장 마감만 하면... 끝이지. 잠시. 말 없는 둘. 서연이제 완전 끝이네. 정말 집을 다... 지었어. 승민잘 살어. 재밌게 살어. 쑥스럽게 웃는 둘. 서연넌? 결혼 준비는 잘 되가? 승민뭐. 그럭저럭. 서연너두 잘 살어. 재밌게 살어. 또 웃는 둘. 그리고 잠시 말이 없다. 서연느네 동네. 우리 놀던 빈 집 있었잖아. 그건 어떻게 됐어? 승민없어졌어. 4년 전에 아파트 들어섰어. 서연... 하긴. 승민... 서연그때 재밌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동네 친구였잖아? (웃는) 승민... 서연서울 올라와서 친구 한 명 없을 때... 너한테 정말 고마웠었는데. 서연이 빙긋 웃으며 승민을 바라본다. 서연말해봐. 승민(돌아보는) ...? 서연그때 나한테 왜 이렇게 잘 해줬었어? 승민, 담배를 한대 물고... 픽- 웃는... 승민... 널 좋아했었으니까. 같이 픽- 웃는 서연. 승민... 알고 있었어? 서연내가 바보야? 그걸 몰랐을까? 승민... 서연너... 나한테 키스 했잖아. 자고 있을 때... 승민... ! 서연나 그거 첫 키스였는데... 응큼한 놈. 조용한 밤. 찌르르... 풀벌레가 울어댄다. 잠시 말이 없는 둘. 서연이 쑥스럽게 웃으며... 천천히... 서연승민아. 기억나? 승민... 서연그날... 승민... 서연건축학개론 마지막 날... 승민... 서연그날... 너 수업 안오고... 승민,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다가... 승민글쎄. 기억이 잘 안난다. (웃는) 서연... 잠시. 말 없는 둘. 승민너무 늦었다. 가야겠다. 서연... 그래. 승민이 일어나 신발을 고쳐 신는다. 서연, 피식 웃으며 따라 일어서는. 순간. 승민이 멈칫. 보면... 문가에 풀어놓은 박스 중 하나. 그 안에 오래된 주택 모델이 보인다. 과거. 승민이 서연의 낙서로 만든 2층집 모델. 승민이 굳은 표정으로 모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서연을 향해 고갤 돌린다. 승민그래. 그날! 서연... 승민왜 그랬어? 서연... 승민그날... 왜 그랬어? 어색한 적막이 흐른다. 타탁탁. 드럼통에서 각목 타들어 가는 소리만. 서연(웃는) 그러게. 왜 그랬을까? 승민... 서연기억이 잘 안나. (웃는) 승민(버럭) 근데 이걸 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건대! 서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승민을 바라본다. 서연...... 내 첫사랑이었으니까. 쑥스럽게 웃는 서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가만히 서연을 바라보는 승민. 서연에게 다가간다.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서연. 승민이 서연을 꼬옥 안는다. 그리고 마치 20살 처음처럼. 서툴게, 두근두근...... 입을 맞춘다. 그렇게 멈춰버린 둘. FO. 100. 웨딩샵. 낮. 촥. 커튼이 걷히면 웨딩드레스 입은 은채가 서 있다. 그 앞 소파에 앉아 있는 승민. 은채(웃는) 괜찮지? 은채, 기쁜 표정으로 거울 속 모습을 보면서 싱글벙글. 은채(옆 직원에게) 근데 가슴 너무 파인 거 아닌가? 너무 야할까봐. (까르르) 직원아니에요. 요즘 이 정도는 다 해요. 여기선 이렇게 보여도 식장에 들어가면... 이어지는 은채와 직원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는 승민. 101. 병실. 밤. 잠들어 있는 아버지 옆에 서 있는 서연.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귀를 바짝 대고, 아버지 숨소리를 들어본다. 끄응- 몸을 뒤척이는 아버지. 베게 옆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한 움큼. 서연, 조심스레 빠진 머리카락 뭉치를 들어 휴지통에 버린다. 서연... 내가 미쳤지. 내가 미친년이지. 102. 오래된 집. 낮. 은채짐 다 들어온 거 같은데요. 완성된 집. 이사가 한창이다. 거실에서 집을 둘러보는 은채. 그 앞에 서연과 승민. 서연(웃는) 어... 은채씨. 고마워. 수고했어. 은채이제 다 끝났네요. 저... 그리구 이거... 은채가 청첩장을 꺼내 서연에게 건넨다. 은채꼭 오셔야 돼요. (웃는) 서연... 결혼 축하해. (웃는) 은채그럼 저희 먼저 가 볼께요. (웃는) 오늘 회사에서 저희 환송회가 있어서... 서연어... 그래. 어서 가봐. 차 막히기 전에. 은채(웃는) 가자. 늦었어. 승민의 소매를 끌고 재촉하는 은채. 짧게 눈 마주치는 승민과 서연. 103. 음식점. 밤. 왁자지껄한 테이블. 은채, 직원들에 청첩장을 나눠 주고 있다. 구소장 (청첩장을 보는) 아... 왜 또 평일이야? 은채그것도 겨우 잡은 거예요. 구소장저런 놈이랑 결혼하는데 좋아? 그렇게 행복해? 은채... 좋죠. 그럼! 낄낄 웃는 직원들. 행복한 표정의 은채. 연신 방글방글. 구소장가서 살 집은 정했어? 은채(웃는) 이스트 빌리지 쪽에 얻을 꺼 같아요. 구소장오... 비싼데서 사네. 승민이 저거 돈 좀 있네. 저거... 승민그런 거 아니에요. 구소장근데 너 오늘 왜 이렇게 맥아리가 없어... 왜? 결혼하기 싫어? 승민(당황한) 내가 뭐... 구소장이젠 못 물러. 늦었어. 늦었어. (으하하하... 껄껄 웃는) 104. 음식점 앞. 밤. 입구에 서 있는 둘. 은채가 황당한 표정으로. 은채지금 그게 말이 돼? 사람들 다 저기 있는데. 승민미안해. 니가 좀... 잘 마무리해라. 은채도대체 지금 어딜 간다는 거야? 무슨 급한 일인데? 말을 해야 알거 아니야. 승민나중에 얘기할께. 나중에... (뒤돌아가는) 105. 승민차 안. 밤. 운전하는 승민. 굳게 입을 다물고. 재촉하듯 악셀을 밟는. 106. 오래된 집. 밤. 집 앞에 도착한 승민. 하지만 불 꺼져 있는 집. 아무도 없다. 107. 병실. 밤. 윙- 서연의 핸드폰이 울린다. 액정에 <승민> 물끄러미 쳐다 볼뿐 받지 않는 서연. 몇번 울리다가 이내 <부재중 통화 7통>으로 바뀌는 액정. 핸드폰 소리에 끄응- 눈을 뜨는 아버지. 일어나려고 애쓰는. 서연(부축하는) 왜 더 자. 아버지... 답답해. 서연답답해? 어디가 어떻게 답답해? 아버지그냥... 기분이 이상해. 내가... 내가 아닌 거 같아. 서연... 어떻게 할까? 의사 부를까? 아버지됐어. 서연그럼? 뭐 해줄까? 등 쳐줄까? 아버지그냥... 서연... 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 서연, 울컥...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촉촉해진 눈으로, 애써 웃어 보이며... 서연그래. 집에 가자. 집 다 고쳤어. 이제 들어가서 살면 돼. 볼래? 등 뒤에서 아버지를 꼭 안고선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는 서연. 한 장씩 넘어가는 완성된 집의 모습. 서연여기가 거실이구... 여기가 안방... 예쁘지? (한 장씩 사진을 넘기는) 아버지... 서연여기가 2층. 또 한장 넘기는데... 승민의 사진. 아버지(겨우 웃는) ... 이 사람은 누구야? 서연이 멍하니 승민의 사진을 보다가... 서연그냥... 친구야. 주르륵. 서연 빰을 타고 흐르는 눈물. 아버지가 눈을 껌뻑이다가... 힘들게 손을 뻗어 서연의 눈물을 닦아준다. 서연이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본다. 딸의 눈물을 연신 훔치는 아버지. 울음을 애써 참으며... 웃어 보이는 서연. 그런 서연 모습에 씨익- 환하게 웃는 아버지. FO. 108. 영안실. 밤.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영정사진으로 이어진다. 그 위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향 연기. 분향실안, 소복을 입고 앉아 있는 서연. 지친 얼굴. 검은 양복을 입은 승민이 들어온다. 서연 앞에 서서... 잠시 마주보는... 109. 장례식장. 낮. 조용히 돌아가는 롤러 위에서, 스르르... 화장로 안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관. 110. 승민차 안. 낮. 비가 온다. 주룩주룩. 겨울비. 운전하고 있는 승민. 그 옆엔 수척한 얼굴의 서연. 무심히 창밖을 바라본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을씨년스런 초겨울 풍경. 낙엽이 지고 앙상해진 나뭇가지들이 획획 지나간다. 111. 오래된 집. 낮. 승민차가 집 앞에 멈춰 선다. 트렁크에서 이것저것 짐을 꺼내 들고 서연을 뒤따라가는 승민. 서연이 현관 앞에서 멈춰 선다. 서연고마워. 너무 수고 많았어. 승민... 서연저기 잠깐만. 서연이 집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오래된 모델을 가지고 나온다. 서연이거... 승민이걸 왜? 승민을 바라보는 서연이 힘겹게 웃어 보인다. 서연받어. 승민... 서연너 첫작품이잖아. (웃는) 억지로 승민의 손에 모델을 쥐어주는. 서연... 궁금하더라고. 너 어떻게 살고 있나... 어떻게 변했을까? 승민... 서연날 기억은 할까? 살면서 문득문득... 생각나더라구. 승민... 서연... 웃으면서 그런 옛날 얘기 하면 재밌겠다... 그냥 그런 거였는데... 말끝을 흐리는 서연. 고개를 숙인 채 발끝을 모은다. 승민서연아... 서연가서 몸 건강하게 지내. 아프지 말고... 서연이 악수 하듯이 손을 내민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승민이 차마 손 못 내밀고 가만히 서 있는. 한걸음 다가가. 승민의 손을 꼭 쥐고 악수하는 서연. 서연... 그동안 고마웠어. 반짝반짝. 눈가가 빛나는 서연. 환하게 웃는다. 112. 오래된 집. 안. / 밖. 낮. 철컥...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서연, 힘없이 소파에 앉는다. 그리곤 몸을 작게 웅크리는. 쏴아아... 굵어진 빗줄기. 차안에 앉아 있는 승민. 유리창에 번지는 빗방울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다. 드르렁. 시동이 걸리자 와이퍼가 움직인다. 비로소 보이는 승민. 촉촉해진 눈가로 애써 참으며 앞을 바라보고 있다. 부우웅. 승민차가 움직이는 소리. 작게 들린다.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서연. 묵묵히 멀어지는 차 소리를 듣고 있다. 113. 순대국집. 낮. 화면 가득. 승민 어머니 얼굴. 가구들 다 비워진 텅 빈 가게 앞에 서 있다. 듬성듬성 흰머리. 구부정한 허리. 그동안 많이 늙으신 어머니. 승민엄마. 이제 다 된 거 같은데. 문 앞에서 짐 보따리 몇개 들고 기다리는 승민. 어머니는 차마 발걸음이 잘 안떨어지는 듯. 우두커니 빈 가게만을 들여다보고 있다. 승민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승민엄마. 여기 봐봐. 사진 찍자. 어머니(돌아보는) ... 에구. 망측하게 내 사진을 왜 찍어. 승민기념으로. 마지막이잖아. 기념사진. 어머니가 잠시 망설이다가... 긴장된 차렷 자세로 가게 간판 앞에 선다. 승민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씨익-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찰칵. 찍히는 사진. 114. 승민집. 밤. 마루에 앉아 있는 승민. 순대국 한 그릇이 밥상 위에 놓여있다. 어머니너 미국 가면 이런 거 언제 먹어봐? 승민... 어머니가게 정리한 날인데... 그래두 마지막으로. (웃는) 승민... 어머니너 낳고 나서 시작했으니까. 33년 국밥을 말았네. 아이고. 오래 했다. (웃는) 승민이 순대국을 앞에 두고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승민... 엄마. 나 미국가지 말까? 어머니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승민나 가면 엄마 혼잔데. 걱정두 되고... 어머니시끄러! 비싼 밥 먹고 얘가 쓸데없는 소리는... 미친놈. 승민... 어머니너 그리고... 어머니가 슥- 승민에게 통장을 하나 밀어준다. 어머니이거 엄마가 주는 너 결혼 선물이야. 가서 보태 써. 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민. 버럭. 큰 소리로. 승민가게 판 돈을 왜 날 줘? 차라리 이 돈으로 아파트로 이사 가. 가서 엄마도 이제 좀 편하게 살어. 어머니아유. 됐어. 내 걱정 하지 말고. 새 애기한테나 잘해줘. 멀리까지 가서 애 고생시키지 말고... 참... 내 정신 좀 봐. 김치를 안 꺼냈네. 어머니가 자리를 피하 듯 냉장고 쪽으로 가서 문을 여는데... 와르르... 반찬통이며 비닐봉지들이 우르르 떨어진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떨어진 비닐봉지를 정리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승민. 착잡한 표정. 어머니여기서 삼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제 다 늙어서 어딜 딴 데 가서 정을 붙여? 난 그냥 여기서... 마저 살다가 죽을래. 승민그런 얘기 좀 쉽게 하지마! 엄마가 죽긴 왜 죽어? 어머니(웃는) 늙으면 다 죽는 거지. 답답한 승민, 큰 소리로. 승민엄만 이 집이 지겹지도 않아? 평생 여기 살면서 고생만 하고... 좋은 기억도 없잖아? 어머니(웃는) ... 집이 지겨운 게 어딨어. 집은 그냥 집이지. 승민... 어머니이렇게 나이 먹고 보면...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다... 승민... 어머니그걸 뭐라 그래? 그... 뭐... 응? (뭔가 생각하는) 승민... 어머니그래! 추억. 승민... 어머니다... 추억이야.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으시는 어머니. 어머니아니. 근데 왜 이렇게 옹 맸대? 두툼한 손마디로 낑낑... 비닐봉지 매듭을 풀려고 애 쓰는 어머니. 측은한 눈길로 어머니를 보던 승민. 갑자기 울컥한다. 승민(짜증난) 그냥 찢어. 뭘 그걸... 어머니가만히 있어봐. 멀쩡한 걸 아깝게 왜 찢어? 잘 풀면 되지. 승민... 어머니... 내 소원은 너 잘되는 거밖에 없어. 너한테 좋은 일이면... 그럼 난 괜찮아. 승민... 어머니(매듭을 푸는) 봐... 이렇게 풀리잖아. (환하게 웃는) 115. 승민집 마당. 밤. 승민, 대문 옆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고 있다. 보면... 철제 대문 한쪽은 움푹 찌그러져서 유난히 녹이 잔뜩 껴있는데... 과거. 승민 발길에 찌그러진 자국이다. 승민이 부여잡고 펴보려고 해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낑낑대는 승민. 담배 연기 때문인지. 눈물이 그렁그렁... 빛난다. 116. 오래된 집. 밤. 넓은 거실.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서연. 간단한 반찬 몇 개와 햇반을 꾸역꾸역. 식탁 한 켠에 놓여있는 아버지 영정. 수저를 멈추고 물끄러미 보다가...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서연.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울기 시작한다. 큰소리로 엉엉... 휑한 거실에 홀로... 서럽게 우는 서연의 모습. 117. 커피전문점. 낮. 마주 앉아 있는 승민과 은채. 은채가 굳은 표정으로 승민을 보다가... 은채윤서연씨랑은 어떤 사이였던 거야? 승민... 은채솔직하게. 잠시 팽팽한 침묵. 승민이 천천히. 승민옛날에... 내가 좋아했었어. 은채... 승민아주 많이... 좋아했었어. 충혈 된 눈으로 승민을 노려보는 은채. 은채... 그게 다야? 은채를 보는 승민. 단호한 표정으로. 승민응. 그게 다야. 118. 과거. 학교. 낮. 건물 벤치에 앉아 있는 서연, 승민을 기다리고 있다. 삼삼오오 나오는 학생들 사이로 승민의 모습. 서연승민아! 승민에게 쪼르르 달려오는 서연. 서연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승민이 굳은 얼굴로 가방을 뒤적뒤적. 전람회 씨디를 꺼낸다. 당황한 서연. 어쩔 줄 몰라하는데... 승민... 나 집에 씨디가 없어. 서연... 승민그리구... 이제 나한테 연락 하지마. 서연(놀란) ...... 왜? 승민이 싸늘한 표정으로. 승민좀... 꺼져줄래? 매몰차게 서연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승민. 멍하니... 그저 멀어져가는 승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서연. 119. 과거. 서연집. 낮.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디제이 멘트. 디제이>오늘 눈 올 확률이 70프로라네요. 올 겨울 첫눈인데요... 화장대에 앉아 조심조심 마스카라를 칠 하는 서연. 포장을 막 뜯은 화장품들이 주욱 서있고. 펼쳐진 잡지엔 <새내기 멋내기 1단계공략> 마지막으로 안경을 벗고 렌즈를 서툴게 껴본다. 120. 과거. 빈 집. 낮. / 밤. 정성껏 화장을 한 서연. 홀로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눈앞으로 뭔가 스르르... 서연이 고개 들어 올려보면 하늘 가득. 조용히 떨어지는 눈발들. 그 위로 조용히 부서지는 서연의 하얀 입김. 화면 바뀌면, 컴컴해진 밤. 눈은 굵어져 펑펑... 마당에 쌓인다. 앉아있던 서연, 무표정하게 일어나... 괘종시계 앞에 선다. 멈춰져 있는 시계추. 뚜껑을 열고 태엽을 돌리는 서연. 이내 다시 째깍째깍. 서연, 찬찬히 빈 집를 둘러보다가... 눈 쌓인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나간다. F.O. 121. 비행기 안. 낮. 나란히 앉아 있는 승민과 은채. 은채난 좀 잘래. 승민... 그래. 안대를 하고 모로 눕는 은채. 승민이 담요를 덮어준다. 창밖으로 눈부시게 밝은 하늘. 122. 오래된 집. 마당. 낮. 하늘에 비행기. 부웅- 지나간다. 올려다보고 있던 서연이 고개를 숙이면. 타일로 정성껏 구획되어있는 소담한 꽃밭. 그리고 그 끝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버지의 기단. 선명한 어린 서연의 발자국. 서연아빠... 나 피아노 다시 쳐. (웃는) 좋아? 123. 오래된 집. 낮. 열심히 바이엘을 치고 있는 여자 아이. 서연이 그 옆에 서서. 서연성은아. 딴따단딴딴... 이 아니라... 딴따단딴딴딴이지. 자... 예쁘게 10번만 더. 화면 바뀌면, 꾸벅 인사하는 여자아이. 여자아이(또박또박)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서연오냐~ 내일까지 연습해와. 혼자 남은 서연이 거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좀 보다가... 재미없는 듯. 에이... 덮고 마는. 으아... 기지개를 펴는데... 띵똥. 벨소리. 서연이 편지를 받아 들고 거실로 들어온다. 겉봉에 승민의 이름이 적혀있다. 서연, 궁금한 얼굴로 포장을 뜯어보면 그 안엔... 종이 한 장. 과거. 승민과 함께 놀러갔던 강촌에서 서연이 그렸던...... 살고 싶은 집의 낙서다. 낙서 속의 집은 완성된, 오래된 집과 꽤 닯아있다. 찬찬히 바라보다...... 환하게 미소가 번지는 서연의 얼굴. 그 위로 노래가 흐른다. <기억의 습작.> 화면 가득. 완성된... 오래된 집의 전경. 점점 멀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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